육아관찰기 (36) -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 : 예상 이상으로 날카로운 아이의 관찰력 by 파란오이

아이는 어느 새 17개월을 거의 지나 가고 있습니다. 새삼 지난달 포스트를 언제 했나 봤더니, 목표는 월 두 개인데 현실은 월 한 개도 참 힘들어 보입니다. 지난달은 회사도 유난히 바빴고 마지막 주는 출장까지 갔다 왔더니, 정말 한 달이 순식간에 삭제되는 듯한 경험을 했습니다. 출장 갔다 와서는 음...여러 가지로 긴장이 풀려서 그랬는지 한 1주일을 환자로 지내는 경험도 했습니다. 아직 중년...이라고 할 나이대도 아닙니다만, 나이를 먹어갈 수록 몇 년 전과 비슷한 일정을 돌아도 몸이 따라오지 못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1주일 가량 출장을 다녀왔더니, 아이는 또 오랜만에 보는(?) 아빠가 반갑기도 하고 서먹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고 한 표정을 보여주는데, 이것도 한 이틀쯤 같이 집에서 굴렀더니 다시 서먹함 없는 사이로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유독 엄마한테 존재감을 많이 표현한다는 것인데(?), 덕분에 요즘은 슬슬 아이와의 친밀도 면에서 아내와의 큰 격차를 느끼고 있습니다. 물론 아내는 이런 의견에 동의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말이죠. 사실 아빠하고만 있으면 또 나름대로 그리 칭얼대지도 않고 잘 놀고 잘 먹고 잘 자기까지 합니다. 아내는 항상 낮잠이든 밤잠이든 아빠가 재우면 '잘 자는' 것에 대해 놀라워합니다.

여전히 출장으로 한 1주일 쯤 집을 비웠다 돌아오면, 아이는 또 어느 새 제 기억과는 약간 달라져 있습니다. 물론 지난해처럼 외모가 훌쩍 바뀌어 있다거나 갑자기 못하던 걸 하게 된다거나 하는 건 이제 기대하기 힘들지만, 변화가 없는 건 아닙니다. 요즘은 음...어느새 팔다리가 길어지고, 움직임이 참 빨라지고, 다채로워지고 있습니다. 특히, 생활 속에서 부모가 했던 사소한 행동들을 모두 따라해보려 하는 데서, 아이의 행동을 보면서 생활 속의 제 행동과 습관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기도 합니다. 이제 정말로 '이 어린 아이가 뭘 알겠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아이의 관찰력은 생각보다 아주 예리하더군요.





1. 이제 아이는 식사를 하는 동안 부모가 옆에서 크게 거들어줄 게 없을 정도입니다. 정말 몇 달 전에는 '이 아이는 언제나 혼자 숟가락질을 익숙하게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게 열심히 숟가락질을 가르치려 하지도 않았는데 어느 새 혼자서도 큰 어려움 없이 밥을 떠서 입에 정확히 넣고 있습니다. 물론 밥을 그릇에서 뜰 때 모양을 잘 다듬지는 못해서, 때로는 너무 큰 밥 덩어리를 뜨거나 해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밥을 뭉치지 않게 잘 골라 주면 정말 혼자서 식사를 끝내기도 합니다.

밥을 떠 먹는 것을 넘어, 아이는 식사를 나름의 취향대로 하기도 합니다. 국이 있으면, 밥을 먹다가 조금 씹기가 귀찮다... 싶으면 밥을 떠서 국에 넣어 버리더군요. 그 다음 조금 말아서 먹기 시작합니다. 저희야 이런 모습을 처음 봤을 때는 감탄했지만 어느 새 일상이 되어 버려 심드렁해져 있었습니다만, 최근 아이의 조부모님께서 집에 잠깐 오셨을 때 이 아이의 식사 장면을 보고 참 많이 놀라시더군요.

식사 도구를 쓰는 데 있어, 이제 숟가락은 필요한 만큼 쓸 수 있을 정도가 되었고, 포크도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져 갑니다. 그런데 이 정도쯤에서 정말 의외의 도구가 아이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는데, 바로 '젓가락'입니다. 어른들이야 젓가락을 쓰는 게 익숙해서 더 편할 수 있지만, 손 힘이 아직 충분치 않은 아이에게는 도통 어떻게 쓰는지 알 수 없을 물건이죠. 그런데....의외로 젓가락의 가장 원초적인 지렛대 원리를 간파했는지, 젓가락 두 개를 움켜쥐면서 어떻게든 음식을 집기도 합니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가 젓가락 쓰기 전에 식탁 바닥에 대고 가볍게 정렬하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는지, 젓가락 쥐면 본격적으로 쓰기 전에 식탁에 탕탕 때리기도 합니다. 처음 봤을 때는 '저거 어디서 본 걸까...'했는데, 저희가 무심코 하던 습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아이의 하루 생활 중 큰 관심사 중 하나는 역시 '먹는 것' 이 아닐까 합니다. 집안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다가 뭔가 간식거리를 보면 눈빛이 바뀌고, 행동이 달라지죠. 그리고 매일 비슷한 일과를 돌다 보면, 식사시간이나 간식시간에서 언제나 비슷한 시간의 패턴이 생기게 됩니다. 여기에, 간식을 챙겨 두는 특정 장소가 있다면 부모의 움직임과 동선에도 뭔가 규칙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저희는 이런 사소한(?) 반복 패턴들을 아이가 설마 그렇게 잘 기억하겠나...하고 조금 얕보았지만(?), 종종 아이는 저희의 예상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장소에서 무엇인가를 먹으니, 아이는 이제 부모가 언제부터 어떤 동선으로 움직이면 뭐가 나오는지를 파악한 것 같습니다. 덕분에 식사 시간이 가까워오거나 아이가 배가 고프다고 느끼면 알 수 없는 메시지로 칭얼거리고 하는 게 아니라, 엄마나 아빠 손을 잡고 식탁의 아기 의자로 끌고 간 다음 다리를 의자에 올리는 시늉을 하며 '올라간다'는 뜻을 전합니다. 그렇게 식탁 의자에 앉으면 본격적으로 '먹을 걸 달라'는 의사표현이 시작되는 것이죠. 아이의 경험 상 아기의자에 앉으면 항상 먹을 것이 나왔으니까요. 그러면 저희는 시간에 따라서 식사 혹은 과자나 과일 같은 간식을 간단히 준비해서 같이 먹습니다. 심지어는 이런 메시지를 보내는 시간까지도 어느 정도 규칙적입니다.

아이가 부모의 동선을 기억하면서 평소에 집 안을 탐험하다 보면(?), 어디에서 뭐가 나오는지도 기억하기 마련입니다. 덕분에 아이는 이제 자기가 좋아하는 간식이 어디 모여 있는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정말 먹고 싶으면 엄마아빠 손을 잡고 부엌으로 데려가 '저 문을 열고 과자를 꺼내라'고 합니다(...). 멸균우유 팩은 자주 빨대를 끼워 물려 줬었더니, 이제는 손 닿는 곳에 우유 팩이 있으면 빨대를 뜯어서 끼우고 먹기까지 합니다. 덕분에 간식과 우유 모두 이제는 아이의 손이 닿기 힘든, 좀 높은 곳으로 모두 옮겼습니다. 이제 아이의 손이 닿는 곳은 언제나 사고가 터질 수 있다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3. 사실 17개월 된 아이의 일상이라면, 엄마아빠를 따라 다니면서 보살핌받거나, 어디서 사고를 칠지 몰라 엄마아빠가 따라 다니면서 노심초사하거나...여하튼 잠 잘 때 아니면 대부분의 시간을 누군가와 함께 지내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위에서 본 것들을 다른 데 가서도 하게 되는데, 그런 것들을 보다 보면 집에서도 아이가 보고 있으면 어느 정도는 긴장감을 가지고 행동을 해야 되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자칫 아이가 제 행동을 보고 어린이집 가서 그대로 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사실 비슷한 일이 없진 않습니다. 예를 들면, 저희 집에는 간단히 먼지 정도만 처리할 수 있는 무선 핸드청소기가 있는데,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가 이 청소기로 바닥의 먼지나 머리카락을 빨아들이는 것을 보아 왔죠. 첫 1년 정도는 청소기 소리만 들어도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어느덧 주위에 누군가가 있으면 청소기를 켜도 그렇게 많이 놀라지 않고, 어느 날부터는 이걸 어떻게든 써보겠다고 충전기에서 뽑아서 들고 다니고 있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아이가 혼자 서 있을 때 갑작스럽게 청소기를 켜면, 아이가 놀라서 넘어지기도 하기 때문에 항상 아이가 놀라지 않도록 보이는 곳에서 청소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은, 대걸레로 바닥을 닦고 있자니 아이가 이 대걸레에 비상한 관심을 보입니다. 그래서 아이 손에 쥐어줬더니, 처음에는 약간 어색하게 움직이다가 곧 바닥을 밀고 다니기 시작합니다. 힘을 주어 닦는다기보다는 끌고 다닌다는 느낌도 좀 있지만, 대걸레를 가지고 바닥을 닦는 엄마의 모습이 아이에게는 이런 식으로 보였나 싶은 느낌도 듭니다. 심지어는 아이가 이걸 꽤 재미있어해서, 며칠 정도는 그렇게 밀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이 쯤 되니, 매일 식사 준비할 때 전자렌지로 음식 데우는 걸 잘 봐 뒀다가, 버튼 똑같이 눌러서 갑자기 빈 전자렌지를 켜는 것 정도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4. 당연히도 이러한 배움은 집에서만 하는 게 아닙니다. 집 말고도 하루의 상당 부분을 즐겁게 지내다 오는 어린이집에서도 몇몇 행동들을 배워 오고는 합니다. 사실 이제 17개월인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뭘 그렇게 많이 배워오겠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는데, 어린이집을 다니면서부터는 아이의 신체능력도 좋아져서 그런지 뭔가 새로운 몸짓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면, 음악을 들으면서 예전에는 몸을 조금씩 흔들기만 했다면, 좀 더 지나니 무릎도 굽히면서 둠칫둠칫 하다가, 이제는 발뒤꿈치를 까딱까딱하면서 박자를 맞추기도 합니다. 두 번째까지는 집에서도 하던 거려니 했는데, 세 번째 동작은 정말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집안을 돌아다닐 때도, 걸음마 처음 할 때는 아무래도 넘어질지도 모르니 팔로 중심을 잡으며 조심조심 다니고 그러는 모습이 보이다가, 좀 익숙해지니 팔도 흔들고 파닥파닥(...)하는 모습으로 분주하게 다니더니, 어디서 배워왔는지 이제는 종종 뒷짐을 지고 다닙니다. 뒷짐지고 어슬렁거리다가 먹을거 꺼내달라고 아빠 부르는 17개월 아이를 보고 있으면 참 여러 가지 생각이 지나가고는 합니다. 손으로 하는 리액션도 좀 늘었는데, 잘 써먹고 있는 손 흔들기와 박수 말고도, 손 깍지끼고 흔들기 같은 건 집에서는 보여준 적이 없으니 어린이집에서 배워 왔나 싶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뭔가를 배워 오는 아이를 보면, 문득 제가 보지 못한 나름의 삶을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가기도 합니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계속 문 밖으로 나가려는 아이를 집 안으로 가장 빨리 들이는 방법은 '손씻으러 가자~' 라고 말하는 것 입니다. 그러면 자신이 좋아하는 손씻기를 하려고 아빠 손을 잡고 안방의 화장실 앞으로 달려가죠. 아이는 이 말의 의미를 정말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을 담은 대야를 놓고 비누거품을 묻혀 손을 씻고 헹구고 물기를 닦고 물을 버리며 손씻기를 끝냅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런 흐름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손을 다 씻고 나면 아이가 발도 물에 넣어 씻으려고 합니다. 그러면 저야 안씻는다고 거부하는 것보다는 나으니 재빨리 양말을 벗기고 발도 한번 씻어주고는 하는데, 이거도 어린이집에서는 발도 씻겨주나...하는 생각도 듭니다. 요즘은 아이가 발을 물에 담그면 그냥 대야에 앉아버리려 해서, 응가하고 엉덩이 씻을 때 이러나...싶은 생각도 약간 드는데, 확인할 길은 마땅치 않습니다.



5. 요즘 아이의 모습을 보면, 엄마아빠의 말을 어느 정도는 충분히 알아듣는 것 같습니다. 걸음마나 맘마, 우유, 간식 같은 민감한 키워드에 대한 반응은 물론이고, 몇몇 간단한 지시 같은 것도 곧잘 알아듣습니다. 걸음마 하러 가자 하면 현관으로 달려가 자기 신발을 찾아 신고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자기가 듣기 싫을 때는 '그게 무슨 소리에요' 라는 표정을 지으며 모른 척도 잘 합니다. 이렇게 자기 기분 따라 반응이 달라지는 것이 오히려 잘 알아듣고 있다는 확신을 주기도 합니다. 

그래도 아이의 행동과 요구가 점점 디테일해지면서, 가끔은 아이가 뭘 요구하고 있는지 도저히 알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물론 이건 저 뿐만 아니라 아내도 마찬가지인데, 그래서 둘 중 한 명이라도 아이가 뭘 요구하는 지 알고 있으면 정보를 공유하기도 합니다. 덕분에 아이와의 생활 대부분에서 큰 답답함 같은 건 나오지 않고 있는데, 부작용이 있다면 이런 부분들이 서로 익숙하다 보니 말을 잘 안 걸게 됩니다. 흔히 말문이 트이려면 언어자극을 충분히 주라고 하는데, 음....노래도 많이 듣고 책도 많이 보고 하루에 몇 권 정도는 책 읽어주기도 하는데, 이 정도로는 조금 부족할지도....라는 생각이 종종 들기도 합니다.

사실 아이도 지금의 상황이 크게 답답하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의 옹알이 같은 것도 오히려 조금 줄어든 것이 아닌가(...) 싶은 느낌도 듭니다. 하지만 저희야 아직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더라도, 아이의 조부모님들이나 어린이집 선생님들께서는 '아이에게 언어자극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왜 아직 말을 할 생각을 안하지...' 라는 생각을 조금 하시는 듯도 합니다. 그렇지만, 하루에 듣는 구연동화나 동요의 양을 생각하면 그리 모자라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여담이지만, 요즘 아이가 참 좋아하는 네이버 클로바는 동요 선곡에 너무 같은 곡을 돌려서, 선곡에 센스가 많이 모자란 모습인데, 심지어는 시간이 갈 수록 똑똑해진다던 녀석이 점점 바보같아 보이는 마법도 펼쳐지고 있습니다. 퇴보도 진화라더니 클로바도 이 함정에 빠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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