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관찰기 (34) - 피할 수 없는 감기와의 조우 by 파란오이

이제 아이는 막 16개월에 접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슬슬 돌을 지날 때쯤 되면, 엄마의 몸에서 받은 면역 대신 자신의 면역으로 일생을 살아갈 준비를 한다고 합니다. 이 말인즉슨, 이 때쯤 되면 지금까지 별 탈 없던 아이도 갑자기 막 아프기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죠. 게다가 어린이집을 가게 되면서 감기와의 조우는 더 이상 엄마아빠가 조심하는 정도로는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당연하지만 이 어린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면, 어른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저희야 이제 감기는 그냥 지나가는 귀찮은 이벤트일 뿐이라(?) 적당히 병원이나 약국을 가서 약을 구해서 먹고 잘 자고 일어나고 이런 과정을 며칠 반복하면 피곤하지만 어떻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만, 말 못하는 이 시기의 아이들은 아이도 아프지만 부모도 신체적, 정신적으로 힘들게 됩니다. 열이 펄펄 나서 축 늘어져 있으면서 아프다고 울고 투정부리는 아이를 보는 건 여러 모로 참 힘든 일입니다....

저희도 이제 15개월을 지나갈 때쯤에 이르러, 이런 상황을 피해갈 수 없이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이전 편에서도 언급했던 콧물감기가 좀 더 악화되어 병원을 다니는 도중에, 고열과 함께 온 가족이 불면의 밤을 보내게 된 것이죠. 뭐 그래도 이 또한 지나가는 일이라 어찌어찌 현대의학의 힘을 빌어 힘든 부분은 잘 넘기긴 했는데, 고난과 역경을 이기고 다시금 정상 컨디션에 가까워진 아이는 그 이전과는 조금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조금 더 영악해졌다고나 할까요....





1. 사실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감기는 피할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나름 심각한 아이는 등원을 시키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당장 저희 아이부터 콧물 정도의 사소한 감기 정도는 등원시키고 했으니 말이죠. 그러다 보니 주말에 다 나아서 갔다가 주중에 다시 걸려서 오는 경우도 흔합니다. 병원에 가도 선생님들이 '어린이집 다니죠?' 라고 묻는데, 이 한 마디에 많은 의미가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집에서 아무리 조심해도, 집에서만 조심해서는 막을 수 없다는 것이죠.

아이의 콧물 감기는 좋아지다 나빠지다를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기침으로 넘어갔습니다. 기침이 좀 심해지기 시작하면 아이가 자면서도 기침하다가 잠을 깨기도 하고, 막상 옆에서 자는 저도 잠을 제대로 자기 힘듭니다. 기침이 날 때쯤 병원을 갔더니, 콧물 이외에 약간 목이 부어 있다는 소견이 나왔습니다. 일단 처방은 콧물이나 기침 증상을 완화시키는 쪽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처방전에서 눈에 띄는 것이 알러지 부분에 대한 약과, 정장제 부분이 있었는데, 정장제 부분은 주위의 아이들이 감기 걸렸다가 장염으로 넘어가는 일도 많았던지라, 이걸 사전 차단하기 위함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이 때만 해도 사실 저희는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열도 없고, 밥도 잘 먹고, 놀기도 잘 놀고, 잠도 잘 자고, 심지어 약도 크게 거부하지 않고 잘 먹었거든요. 대부분이 정상 컨디션인데 단지 콧물이 좔좔 흐른다는 점 정도였죠. 그러다가 기침이 나기 시작하니 뭔가 상황이 좀 바뀌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기침이 시작되면서 잠도 좀 설치고, 약이 조금 들어가기 시작하면 조금 미열도 오르고 그래서, 어린이집 추천으로 병원도 한번 더 가보고 그랬습니다. 그래도 처음 미열 났을 때는 해열제를 처방받긴 했지만, 실제로 써야 할 상황이 오지는 않았었습니다.


2. 그렇게 상태가 유지되던 어느 날, 아침에는 잘 놀고 잘 먹고 어린이집을 갔던 아이가 열이 꽤 심해져서 조퇴를 하고 아내와 병원을 가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당연히 어린이집 갈때까지만 보고 출근했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던 제 입장에서는 '이게 뭔 일인가..' 싶었죠. 병원에 다녀온 바로는, 열이 대략 39도 정도까지 올라가서 감기약과 해열제를 같이 받았습니다. 목과 콧물 쪽의 감기약은 식사 때마다 먹고, 해열제는 상황 봐서 투입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계속 열이 나면 그냥 규칙적으로 해열제를 투입하게 됩니다.

아이가 열이 펄펄 나면 당장 방안 온도부터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될지 조금 난감해집니다. 땀이 많이 나고 이걸 적당히 물수건 같은 걸로 닦아주면서 식혀야 되는데, 오한이 오기도 하죠. 책에 보면, 아이가 이렇게 열이 날 때, 이열치열로 가는 건 해서는 안 될 행동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열 식힌다고 너무 시원하게 해도 안되고 말이죠. 물론 제가 감기 걸렸을 때는 오한도 오고 해서 일단 좀 따뜻한 데서 웅크리고 있는데, 일단 제가 주로 하는 방향으로 해 주면 안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이 열이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땀이 많이 나다 보니, 한 시간쯤 자고 일어나면 등 뒤가 완전히 다 젖어 있습니다. 이 부분을 어떻게라도 해결하고 싶었는데, 그나마 일반 아기 이불보다는 쿨매트에서 재우는게 훨씬 나았습니다. 그 외엔 딱히 해결책이 없었습니다. 

열도 나고 하다 보니 아이가 아파서 축 늘어져 있는 걸 보면 그리 마음이 편치는 않습니다. 아이가 늘어져 있을 때 당장 닦을 수 있을 만한 곳은 이마와 목덜미 정도인데, 이 정도라도 물티슈로 조금씩 닦아주다 보면 끙끙거리던 아이가 조금은 기분좋게 잠이 드는 걸 보고 있자면 좀 짠한 기분이 듭니다. 땀이 많은 등 같은 부분도 조금은 닦아주려 했으나, 아무래도 열이 나다 보니 예민해지고 해서 그런가 아이가 절대 건들지 말라고(?) 손을 막 밀어내더군요. 아무래도 놀래고 하는 게 보여서 그냥 목 정도까지만 닦는 것으로 타협했습니다.


3. 열이 꽤 올라서 병원을 갔다 온 다음날, 아이는 어린이집을 쉬기로 했습니다. 물론 하루종일 아이의 칭얼거림을 받을 생각을 하면 살짝 아찔해지지만, 그렇다고 이런 상태의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도 참 안쓰러운 일이니까요. 전날 저녁에 약을 어떻게든 먹고 잤지만, 밤새도록 조금씩 끙끙거리던 아이는 여전히 열이 꽤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몸도 아프고 하다 보니 조금은 더 응석이 늘어난 듯한 느낌도 들었는데, 아픈 아이에게 매몰차게 예의를 강조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안고 있으면 평소와 다르게 축 늘어져서 꾸벅꾸벅 졸고, 내려놓으면 막 우는데 안고 있자면 무겁고....갈등되는 순간입니다.

열이 오르고 해서 입맛이 없더라도 밥은 먹어야죠. 이건 저도 감기 걸리면 밥맛도 사라지고 하니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이와 저의 차이라면, 저는 뭐라도 먹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거랄까...이것도 예전에 제가 어릴 때 생각하면 저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부모의 입장에서는 뭐라도 먹이고 약을 먹여야 될지언데, 밥을 먹이는 것 자체가 미션이 되어 버렸습니다. 평소의 1/4도 안먹으면서 조금만 비위 상하면 숟가락 밀어내고, 먹어도 막 입에서 뱉는 것을 보면서 음...이대로 괜찮은가 싶은 걱정이 스쳐 지나갑니다. 

하루종일 밥을 워낙 적게 먹다 보니, 오후 쯤 지나니 밥이 아니더라도 뭐라도 먹여야 될 거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마트에 달려가 부랴부랴 장을 보고, 일단은 아이가 잘 먹던 과일과 과자(...)를 중심으로 조금씩 먹여보며 아이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는데, 일단 밥 빼고는 그럭저럭 먹는 모습입니다. 이녀석 아프다고 입에 맞는 달달한 것만 먹으려 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렇게 잘 먹던 밥도 잘 안넘어가는가 싶은 생각이 드니 열이 떨어질 때까지만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예전에는 참 잘 먹던, 참으로 달달한 이유식을 아내가 힘들게 준비했는데 이것도 참 안먹으려 들어서 아쉬웠습니다. 정말 맛있었는데...결국 냄비에 남은 건 제가 저녁 간식으로 먹고 정리했습니다. 결국 아이는 아기과자와 우유, 바나나와 골드키위 같은 다이어트식(?)으로 배를 채웠는데, 다음날 응가가 약간 설사 비슷한가 싶었는데 이게 과일의 흔적인가 싶었습니다. 과일의 흔적이 사라질 때쯤에는 장염으로 넘어가지 않고 바로 정상으로 돌아오더군요. 한시름 놓았습니다.


4. 약 먹이는 건 더 큰 미션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평범하게 약병에 넣어서 입에 물리면 음...잘 머금고 있다가 한번에 뱉더군요. 아이가 빨리 회복되려면 저걸 그대로 꿀꺽 삼켜야 될것인데 참 난감합니다. 약 맛도 달콤한 딸기맛이라고 했는데, 이 딸기맛이 약간 거부감이 있었는지 약이 싫은지는 모르겠으나 참 귀신같이(?) 약을 잘 골라내는 재주를 선보였습니다. 그렇다고 아이의 의견에 따라(?) 약을 안먹일 수는 없고, 어떻게 자연스럽게 먹일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일단은 음...예전에 비타민 D를 주던 방법으로, 과자에 묻혀 주기를 시도했습니다. 딱 한 방울씩 묻혀 주는데, 첫 입에는 잘 먹더니, 갑자기 평소와 맛이 다른 걸 느꼈는지 다시 과자를 확인하기 시작합니다. 다시 엄마가 과자에 약을 묻히는 걸 보더니, 아이가 과자를 받아들고는 이리저리 굴려 뒷면까지 유심히 확인을 하고, 약이 묻지 않는 것만 먹습니다. 그 다음은 빨대컵에 들어 있는 물에 조금 넣어주는 방법을 써 봤는데, 이건 조금 더 나았지만 곧 눈치를 채는 듯 했습니다. 사실 물에 넣어주면 그 안에 있는 물을 다 마셔야 정량을 먹을 수 있을 텐데, 조금 마시다 말더군요. 이게 맛으로 눈치를 채서 그런 건지, 그냥 물을 마실 만큼 다 마셔서 그런 건지 아리송합니다.

먹을 거에 섞어 먹이기의 다음 단계는 간식과 식사에 섞어 먹이는 겁니다. 일단 바나나는 잘 먹는 모습이 있었으니, 바나나를 넣은 요거트에 약을 조금...했는데, 요거트가 약간 딸기맛이라 조금은 묻어갈 수 있을 듯 했습니다. 그런데 딸기맛 요거트 자체가 어색했는지, 아니면 약 맛을 감지했는지, 아이는 또 평소와 다르게 경계심을 높입니다. 그리고 다음 단계에서 평범하게 식사에 조금 섞어 먹이는 건 음...이쯤 되니 아이는 엄마가 주는 숟가락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식사 진행 자체가 힘들어진 것이죠. 사실 아직 만 1살의 아이라고 조금 얕봤나 싶습니다만, 여하튼 아이는 저희의 트릭을 대부분 간파한 듯 한 느낌입니다.

이런 방법들을 시도하면서 남은 부작용이라면, 아이가 좀 더 용의주도해졌다는 점 정도가 있겠습니다. 아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엄마가 준비해서 내미는 숟가락은 일단 아이가 한 번 의심을 하면서 받습니다(....). 덕분에 식사나 간식 진행이 조금 더 까다로워졌습니다. 간식도 매번 먹던 것만 먹으려 들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고 하면 예전에는 일단 엄마를 믿고 자신있게 새로운 도전에 나섰는데, 이제는 엄마를 의심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 참으로 난감합니다. 역시 믿음 소망 사랑 중 가장 으뜸은 믿음인가...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지나가는군요. 이렇게 아이는 의심하는 법을 배우고(...)를 저희는 어리다고 아이를 쉽게 보고 얕은 수를 쓰면 역효과가 난다는걸 배웠습니다(......).



5. 감기 걸린 동안에 병원을 며칠에 한번씩 다녔더니, 점점 병원을 오는 데 대한 아이의 긴장감이 떨어지는 느낌도 듭니다. 병원에 자주와서 의사 선생님도 자주 보고 한동안 무서운 주사도 맞지 않았으니 그새 친근해졌나봅니다. 병원에서도 걸음마하고 돌아다니려고 하고, 또래 친구 만나면 탐색전도 하고 해서, 무사히 수속을 마치고 진료실로 들어가는 것까지도 꽤 큰 미션이 되어 가는 느낌입니다. 그 와중에 간단히 진찰을 마치고 나서 의사 선생님께서 '다 끝났습니다 잘했어요' 하니 아이가 박수를 치고, 덕분에 저희도 의사 선생님도 간호사 선생님도 웃으며 모두 같이 박수를 치면서 진료를 끝내기도 했습니다. 역시 건강은 중요한 것입니다. 물론 조만간 예방접종으로 병원을 방문하게 되면, 아이는 다시금 병원 방문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게 될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다행히 열은 이틀 정도 높다가, 주말에 들어가면서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평균적으로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약간 미열 정도가 있기도 하지만, 정상 범주 안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이의 컨디션은 음...이제 익숙한 밥은 그 이전만큼 의욕적으로 잘 먹고, 간식도 잘 먹고, 낮잠은 아직 좀 더 많이 자고, 물도 예전보다는 좀 더 많이 먹고 합니다. 이거야 한 이틀정도 제대로 못먹고 잠도 설치고, 땀 나면서 물도 많이 필요하겠거니 하고 있습니다. 통통하던 볼살이 조금 빠진 느낌도 있는데, 이것도 뭐 하루 정도 다이어트 식단으로 간헐적 단식에 가까운 하루이틀을 보냈으니 그러려니 합니다.

물론 모든 것이 예전으로 돌아온 것은 아닙니다. 아이는 그 며칠 동안에도 조금 변해서(?), 다시금 여전히 어리광을 부리고, 엄마를 좀 더 열심히 찾고 달라붙어 있는 느낌입니다. 덕분에 아이가 아직 다 낫지 않은 와중에도 아내는 너무 집요하게 엄마만 찾는 아이에 지쳐서 스트레스가 폭발해(...) 갑자기 아빠와 아이만 남기고 동네 카페로 머리를 식히러 나가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 와중에 집에 남아서 아이를 좀 달래고 낮잠을 좀 재우고(....) 하면서 하루를 넘기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아이에게는 엄마가 우선이라, 아빠와 둘이 있을 때도 별 일 없이 나름 잘 지내지만, 가족이 모두 모이면 여전히 아빠는 관객인 경우도 흔합니다. 

그리고 음...얕은 수로 약을 먹인 댓가로(?) 아이의 새로운 먹거리에 대한 도전이 조금 신중해졌습니다.물론 아파서 입맛이 좀 떨어지기도 했지만요. 지금까지는 엄마가 해줬으면 믿고 먹는다...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뭔가 익숙치 않으면 한번 의심하고 시작합니다. 슬슬 배달 이유식을 벗어날 시점에, 어제는 간을 거의 뺀 쇠고기김치찌개와 브로콜리새우볶음을 저녁으로 내 보았는데, 브로콜리와 새우를 참 의심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래도 앞으로 아이가 먹고 살려면 엄마와의 믿음이 중요할 지언데, 이 신뢰 관계를 어떻게 잘 쌓아갈지도 조금 고민입니다. 그래도 이게 다 아이의 건강을 생각해서 하는 것이거늘 언제 아이는 엄마의 걱정을 이해할 수 있을지 참 멀게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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