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관찰기 (32) - 만리길 인생도 첫 걸음마부터 by 파란오이

14개월 차. 인생에서 누구에게나 있는 '처음' 은, 그 전까지는 없었던 역사가 새롭게 만들어지는 각별한 의미가 있는 순간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첫 아이가 나오고, 저희 가족은 말 그대로 수많은 '처음'을 겪으면서, 예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솔직히 어렵고 힘들지만, 그렇다고 피하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그냥 어떻게든 가는 겁니다. 다행히 주위에 비슷한 시기에 있는 또래 부모들이 있어, 요즘은 서로 덕담하면서 친목을 돈독히(?) 하기도 합니다.

아이에 따라 발달사항이 다르지만, 저희 아이는 대근육 발달에서 좀 여유있게 가는 면이 있습니다. 뒤집기는 제 때 하더니 뒤집기만 하고 배밀이도 안하다가 정말 급해지니 인내와 고통의 시간(?)을 거쳐 기어가기를 시작하더니, 그 이후에도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몸만 열심히 만들더니(?) 걸음마는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 걸음마도 좀 인내와 고통의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은 도서관에 영유아들이 책보며 놀수 있는 공간인 '아기둥지방'에 갔더니 저희 애보다 어린 애도 걷고 뛰고 하는 걸 보니 신기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사실 머리로는 '아 이제 슬슬 걸어야지' 하면서도 너무 먼 미래의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 것이 이 걸음마입니다.

그리고, 저희 아이도 드디어 계기를 얻어(?) 걸음마를 시작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아이가 첫 걸음마를 시작한 것이 어린이집 첫 등교와 거의 겹칩니다. 그래서 어린이집 가기 전에는, 아이가 어린이집 가서 걷고 뛰는 애들 보면 위기감 같은 걸 느껴서 걷지 않으려나 했는데, 이건 반 정도만 맞은 것 같습니다. 첫 걸음을 떼고 나서 어린이집을 간 아이는, 어린이집을 가서 나름 열심히 걸음마를 연습하고 오는 것 같습니다. 나날이 걸음이 빨라지는 아이를 보는 제 입장에서는...기특하기는 한데 말썽도 비례해서 느는 바람에 육체적 정신적인 피로도 좀 더 늘었습니다.


1. 아이의 걸음마 여정이 언제부터 시작인가 되돌아보면, 작년 가을에 처음 기어다니기 시작할 때부터였지 않나 싶습니다. 그 때부터 주위에 있는 뭔가를 잡고 일어서려고 부단히 노력했는데, 저와 아내는 그런 일련의 움직임을 '몸만들기'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겨울에 접어들 때쯤 되니 잘 기고, 잘 일어서고 하는데, 첫 걸음을 떼려니 아주 위태위태한 모습이 겨울 끝날 때까지 그대로 갔습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이 아이는 넘어지기 싫어서, 완전히 준비가 되면 첫 발을 떼려나...라는 생각으로 그냥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돌 때 못 걸으면, 보통 거기에 +100일이라는 속설도 있어서 더 느긋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뭐 저희야 느긋했지만, 의외로 주위에서 느긋하지 못하신 분들도 종종 있었습니다. 아이의 조부모께서는 아이가 걸음이 늦다고 생각하셨는지, 보행기도 좀 열심히 태워보고 해서 다리 운동 좀 시켜야 하지 않냐 하셨는데... 운동량은 뭐 평소 돌아다니고 일어서고 앉고 하는 걸로도 충분히 괜찮아 보였습니다. 아이가 보행기 움직이는 것도 돌 지나서야 조금씩 가능하긴 했는데, 그 쯤 되니 아이는 보행기가 자기 움직임을 방해한다는 걸 깨닫고(?), 잘 안타려 들더군요. 심지어는 아이 키가 좀 있다 보니 보행기가 작아보이는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연말연초에 돌 전후로, 어느 겨울날 근처 도서관의 아기둥지방을 갔을 때, 저희 애보다 한 달 정도 더 어린 아이도 잘 걸어다니는 걸 보면서, 주방 벽에 붙은 발달표에 '11개월 아이는 걷기도 합니다. 물론 아직 기는 아이도 있습니다' 라는 문장을 떠올리면서 그냥 감탄만 하고 있었던 기억도 납니다. '저 아이도 걷는데 왜 우리 아이는 안되는 거야' 라고 조바심내기엔 지금까지 아이가 보여준 신기한 점들이 꽤 많아서, 조바심까지는 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2. 첫 걸음마는 참 신통하게도 3월 첫 날 볼 수 있었습니다. 엄마 방 문 앞에서 엄마가 서 있는 데까지 한 네 발짝 정도를, 엎드려 기어 오지 않고 그대로 발을 떼서 움직여서 엄마 다리를 붙잡고 안기는 데 성공한 것이죠.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딱히 영상이나 사진을 남기지는 못했는데, 그 이후에는 조금씩 기어다니는 것이 줄고, 걸어다니는 것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엄마, 아빠의 손에 매달려서 걷는 모습이었는데, 이것도 좀 지나다 보면 손에 매달리기보다는 손을 잡고 끌고 다닌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바뀌었습니다.

첫 발을 떼고 나니, 예상 이상으로 아이의 걸음마는 빨리 늘어 가는 모습입니다. 물론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해서, 하루 종일 주위 아이들이 걷고 뛰고 하는 걸 보다 보니 동기유발이 되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게다가 집에서는 잘 안 걷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아이의 어린이집 연락장에서 하루 종일 아장아장 걸으면서 어린이집을 돌아다녔다는 뉘앙스의 메시지가 보이면 아이에게 속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뭐 아무렴 어떻습니까. 여하튼 잘 걸어다니고 있다면 다행인 것이죠.

그리고 아이가 걸음마를 떼기 시작하면서, 산책의 난이도 또한 높아졌습니다. 예전엔 유모차 타고 드라이브하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유모차에서 내려 걸음마를 해 보고자 하는 요구를 확실하게 표현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유모차에서 내려 땅에 발을 딛으면, 아이 표정이 그렇게 해맑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지금까지는 보여주던 것만 보다가, 직접 보고 싶은 것을 보고 가고 싶은 데 가까이 갈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저런 모습을 보면 음...솔직히 하루 30분 걷기 싫고 러시아워 사람들 사이에 끼이기 싫어서, 출퇴근에 왕복 두 시간 넘게 운전을 하더라도 기꺼이 차를 가지고 나가는 게으른(?) 아빠는 반성을 해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3. 걸음마를 떼고 나서부터, 아이에게는 산책을 나가는 것이 큰 즐거움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집에서 종종 엄마에게 붙어서 떼쓰며 울다가도, '걸음마 걸음마' 소리만 들으면 현관으로 달려가 신발을 찾기도 합니다. 혹은 현관에 가서 유모차나 신발을 만지작거리고, 자기 신발을 찾으면 양손에 신발을 들고 온 집안을 다니면서 시위하기도 하죠. 이 산책이 부모와 아이 양쪽에서 써 먹을 수 있는 당근같은 존재이긴 한데, 요즘 미세먼지가 워낙 문제인지라 매일 가능하지는 않은 것이 아쉽습니다. 그나마 요 며칠 정도는 꽤 괜찮아서 다행이었습니다. 요즘은 아이가 너무 자주 나가겠다고 제 신발을 들고 시위를 해서, 아내가 신발을 숨겨 놓기도 했습니다. 

이제 집 안에서는 정말 잠깐만 눈을 떼면 언제 아이가 어디 가 있는지 따라가기 힘들 정도입니다. 예전에 꼬물꼬물 기어갈 때는 그래도 예상은 되었는데, 지금은 정말 눈 두번 깜빡 하면 다른 방 가 있고 그렇습니다. 그나마 이제 서기도 잘 서고 하니 넘어지는 걱정은 좀 덜한데, 그렇다고 또 안넘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루에 한번 정도는 뒤로 넘어가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맨날 잡고 안고 다닐 수도 없고, 아이의 움직임의 자유를 위해 조금 떨어져 있으면 사건사고가 워낙 순식간에 생기고... 사실 정답은 바닥에 매트를 촘촘하게 까는 것인 것을 알지만, 아직 매트를 따로 구하지는 못했습니다.

집 안이든 밖이든 언제나 아이를 보는 부모의 심정은 조마조마합니다. 하루하루 지날 수록 아이의 몸놀림에는 자신감이 붙고, 속도도 더 붙으면서 아이도 더 자신있게 다니는 것이 눈에 보이지만, 그래도 어디서 넘어질까 긴장하면서 보게 됩니다. 그리고 정말 뜬금없는 곳에서 갑자기 주춤하거나, 뒤로 넘어가면 또 당황하게 됩니다. 잘 가다가 갑자기 휘청 하면서 무릎부터 바닥에 닿는 걸 보면 과연 괜찮을까 싶은데, 아무렇지 않게 다시 돌아다니는 걸 보면 또 괜찮은가 싶습니다. 그래도 밖에서는 무릎보호대와 헬멧이라도 씌워야 되나 고민되는 부분입니다.


4.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하면, 아이의 변화는 단순히 기어 가던 아이가 걸어 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이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하고 싶은 것도 많아지고, 요구하는 것도 그렇고 요구하는 방법도 참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놀이에 엄마 아빠를 끌고 가는 것 자체가 꽤 난이도가 높은 일이었다면, 걸어 다니면서부터는 두 손을 써서 엄마 아빠를 끌고 다닐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주위에 있는 엄마나 아빠를 부른 뒤에, 손을 잡고 일어선 다음 온 몸으로 끌고 가면 되는 것이죠. 딱 위에 사진 같은 광경이 나옵니다.

자연스럽게 일어설 수 있게 되니, 다음 단계는 당연히 손을 뻗어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을 노리는 것이 됩니다. 덕분에 책상 위에 올려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마우스 같은 잡다한 아이템들은 모두 아이의 먹잇감(?)이 되고, 잘 보이는데 잘 잡히지 않으면 투정을 시작합니다. 이제 아이가 참 좋아하는(?) 스마트폰이나 TV 리모컨 같은 건 단지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올려둔다고 끝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고려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손에 닿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메탈랙 위에 올려둔 리모컨 같은 것을, 손에 아슬아슬하게 닿는 바닥을 손으로 살살 밀어서 끌어내리는 걸 보고 있으면, 과연 이 아이는 지금 무엇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걷기 이후에는 이제 기어 올라가기 같은 움직임도 가능해졌습니다. 예전에는 낮잠 자는 바운서에 올라가지를 못해서 직접 안아서 올려줘야 했는데, 이제는 바운서 위로 기어 올라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침대 위에서 놀다가 내려갈 때는 또 굴러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는데, 이제 아이는 침대 모서리를 보면 적당히 뒤로 돌아 다리부터 먼저 내리면서 미끄럼타서 내려올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좀 걱정이 되긴 한데, 다른 데 정신 팔고 있다가 그냥 떨어지는 경우도 가끔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아이의 움직임은 예의주시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죠.

움직임이 좋아진 만큼 표현력이 좋아졌다는 것이 가장 와닿는 장면은 아침 시간입니다. 보통 저희 아이는 아침 6시~6시 30분에 일어나 아빠를 깨우고, 거실에 나와 잠을 조금 깬 다음 기저귀를 갈고, 아빠와 부둥부둥 하다가, 7시 30분 전후로 우유 한 팩을 마시고 엄마를 깨우러 갑니다. 그리고 걷기 전에는 이 모든 활동을 아빠가 안고 다니면서 했다면, 이제는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돌아다니면서 주도권을 꽤 가져갔습니다. 특히 우유 마실 시간은 아이가 각별히 따로 챙겨서(?), 이제 우유 마실 시간이 가까워지면 아이가 알아서 부엌으로 가서 우유를 챙겨둔 수납장을 열고, 우유를 하나 들고 와서 아빠한테 내밉니다. 그럼 아빠가 우유에 빨대를 끼워서 아이 입에 물려주는 것이죠. 이제 우유 준비하는 동안 보채지도 않는 거 보면, 아이는 하루하루 다르다는 게 느껴집니다.


5. 이제 첫 걸음마를 뗀 지 한 달 여가 지난 아이는, 집에서도 8:2 정도로 대부분의 이동을 걷기로 해결합니다. 말 그대로 '아장아장' 걷는 아기를 보고 있자면 아직도 좀 어색한데, 잘 때 입는 수면조끼를 입고 걷는 아침 시간에는, 언젠가 감명깊게(?) 보았던 다큐멘터리 속의 막내펭귄이 걷는 것과도 좀 닮았나 싶습니다. 속도도 제법 붙었고, 바닥에 책 같은 것들이 널려 있어도 어느 정도는 잘 넘어 다니는데, 옷가지 같은 것들은 가끔 밟으면 미끄러지기도 합니다. 아이의 동선 주위의 장애물이나, 혹시 넘어지더라도 주위에 날카로운 모서리 같은 것에 다치지 않도록 잘 치워두어야 될지언데, 이제는 이 동선 자체를 예상하기도 어려워졌습니다.

한편 걸음마와 어린이집의 시기가 겹치고, 이와 함께 아이의 낯가림과 분리불안, 엄마에 대한 집착 같은 것이 동시에 오니, 이 시기를 버텨내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루종일 아이의 일관적인 태도는 '엄마를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안겨있을 것이다' 라서, 엄마와 아빠가 함께 있으면 엄마에게만 안기려 하고, 아빠가 있어도 별로 관심을 주지 않고 울기만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달라붙는 아이 덕에 좀 더 힘들어진 아내는 아이에게 '아빠 너무 좋은 사람이라고, 좀 가보라고' 설득하고 있습니다만 역시 안통하는 모습입니다. 게다가 움직임이 빨라지니 수습은 더욱 힘들어지고...

그런데 또 막상 엄마가 외출해서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진정하고 아빠하고도 또 잘 지냅니다. 이런 식으로 어린이집도 별 탈 없이 잘 적응하고 있는데, 심지어 최근에는 연락장에 적힌 아이 행동에 대한 평이 '매우 신중'에서 '매우 적극'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참으로 다행이고 아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다가도 한편으론 최근 엄마한테 달라붙어 울기만 하던 아이 모습만 보던 저희는 약간의 배신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 길을 조금 먼저 가신 분들이 제게 말씀하시길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 그때가 진짜야. 아직은 맛보기 데모같은 느낌일 거라고. 그 때 되면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라고 하셨는데, 막상 그 때가 되니 그분들의 말씀이 또 생각납니다. 그리고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는 어떻게 이다지도 힘이 넘치는지, 저는 하루종일 끌려다니면서 진이 다 빠지는데 아이는 여전히 눈빛이 살아있는 걸 보면 참 대단합니다. 아이의 에너지 약간과 제 피곤함 약간을 바꿔서 아이는 낮잠을 좀 자주고, 저는 좀더 힘을 내서 일하면 서로 좋지 않을까 싶은 상상도 하지만, 그렇게 될 리가 없겠죠. 그래도, 작년 이맘때보다는 지금의 튼튼하게 잘 돌아다니는 아이가 더 귀여운 걸 보니, 아직 이 아빠는 고생이 부족한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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