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관찰기 (21) - 가을과 함께 사라지는 것과 다가오는 것들 by 파란오이


최근 몇주간 정말 눈 코 뜰새 없이 살았더니, 이 포스트가 격주로 잘 굴러간다고 생각했건만 그건 제 착각이었나 봅니다(....). 마지막 포스팅 날짜를 보니 어느새 3주가 지나 있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정신없이 살긴 합니다만....그래도 그 이상으로 아이는 정말 훌쩍훌쩍 큽니다. 사실 이 말도 이미 여러 번 했던 거 같긴 합니다만 말이죠.

그렇게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새 그 덥던 여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이제는 반팔을 입고 아침에 창문을 열면 추워서 다시금 문을 닫는 계절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가을을 맞아, 아이가 있기 전에는 가을 냄새만 나도 영접을 준비했던 무화과를 이 정신 없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만나고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것도 못 챙겨먹고 지나갔으면 저희 부부는 아이가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막 지워가는구나...하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집에서 직접 만든 잼을 챙겨 먹으면서 '아 아름다운 가을이야' 라고 생각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물론 아직은 못먹지만 저기에 욕심 내는 손이 하나 늘어난 게 큰 변화죠.

본격적인 가을에 접어들면서 저희 가족에게도 여러 가지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아이가 부쩍 크면서 성장의 계단을 몇 걸음 정도 올라간 것도 있지만, 그것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지난 주가 추석이었죠. 추석 지나고 오면서 또 여러 가지로 생각이 복잡하기도 했습니다. 




1. 가을이 오면 일단, 아이든 어른이든 가장 먼저 바뀌는 것은 옷차림입니다. 당장 무더위가 가고 선선한 바람이 들어오고, 아침에 반팔 티셔츠를 입고 베란다에 나가 창문을 열다가 선선함을 넘어 추위를 느끼고 문을 닫을 때쯤 되면, 다시금 긴팔 티셔츠들과 후드, 점퍼들을 찾게 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불을 덮지 않는 아이 또한, 이 선선한 공기와 차가운 바닥을 버티기 위한 옷차림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물론 예상은 했지만....봄에 입었던 옷은 거의 예외없이 모두 입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100일 시절과 지금과는 몸무게나 키가 거의 배로 차이나니까요. 봄에는 막 스와들업을 졸업하고 우주복을 아주 헐렁하게 입던 시기였지만 지금은 우주복 입히면 단추를 잠글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때는 참 넉넉했던 80 사이즈가 이제는 참 불안하게 보이는 걸 보면서, 이 시절 아이 옷은 정말 지금 한 철만 보고 사야 되는구나 싶습니다. 그리고 이걸 두어번 겪은 아내는 이번에는 큰돈 들이지 않고도 입을만한 조합을 잘 만들어 왔습니다.

그 시절(?) 입던 옷들을 지금 꺼내 보면 음...이것저것 얼룩도 많고 해서 남 주기도 무안한 상태인 것도 많은데, 참 맘에 들어서 깔끔하게 입던 옷들도 있습니다. 이런 옷들도 지금은 작아서 못입게 되었으니 음...아끼다 망한 건 아니지만 아껴서 손해봤다는 생각이 조금은 들기도 합니다. 사실 저도 어릴 때는 거의 새옷을 입어본 기억이 없이, 친척 형들이 입던 옷을 물려받은 게 거의 다였는데, 지금 와서는 그 때 부모님이 제 옷을 바라보던 기억을 조금은 알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2. 거실의 시설에도 약간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아이가 슬슬 덩치가 커지고, 움직일 기미를 보이면서 대비를 할 필요가 생긴 것이죠. 일단 먼저 바꾼 것은 바운서로, 기존의 파이프 프레임 기반 피셔프라이스 바운서는 원목 의자 같은 좀 더 우아한 모습의 바운서로 바꿨습니다. 장점은 음...최대한 눕히면 진짜 침대처럼 잘 수 있다는 겁니다. 기존 바운서는 좀 구겨져 자는 느낌도 있었고, 등쪽이 좀 휘어 말리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단점은 음...앉히면 각도가 좀 세워져 있는 느낌이 들고, 양쪽 서포터가 약해서 아이가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도 있습니다. 실제로 한두번 떨어질 뻔도 했죠. 그리고 아이가 타고 있으면 들어 옮기기가 여의치 않습니다. 이거야 당연히 피해야 하는 상황이긴 하지만요. 그래도 일단은 아이가 잘 적응해서, 요즘은 그냥 분유 먹을 때 의자나 낮잠용 침대처럼 잘 쓰고 있습니다. 

아이의 점점 빨라지는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베이비룸을 구해 봤습니다. 베이비캐슬이라고도 부르는 거 같고, 제가 보기엔 그냥 베이비케이지 같은 느낌이 들지만 일단은 룸이라고 합니다. 브랜드도 이러저러 있는데 다들 가격대도 만만치 않아서 고민하던 차에, 옆 동네에 중고가 하나 나와서 직접 가지러 갔다 왔습니다. 중고로 파시는 분은 사실 얼마 쓰지도 못하셨는데 집이 좁아서 결국 방출하게 되셨다는 아픈 사연도 있었습니다만...직접 받아보니 이해가 되긴 했습니다. 그냥 박스째로는 저희도 차에 실을 수 없었습니다....

집에서 설치하면 거실을 꽤 잡아먹긴 하는데, 기존 매트 위에 정확히 올라가서, 공간을 더 먹고 그러진 않습니다. 높이도 좀 있고 해서 아이가 종종 답답함을 느끼기도 하는 게 고민이고, 아이가 분리불안 같은게 오면 이게 베이비룸이 아니라 부모의 감옥같은 느낌으로 아이와 함께 유폐된 기분을 맛보게 됩니다. 그리고 브랜드명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뒹굴러' 라는 국내 브랜드라는 거 같습니다. 이름 참 그럴듯하게 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3. 가을과 함께 멀어진 것으로는, 드디어 졸업한 모유수유도 있습니다. 애초에 저희 부부는 모유수유 부분에서도 크게 고집부리지 않기로 했었고, 6~7개월 정도 되면서 어느 정도 모유수유 졸업에 대한 준비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 정도는 있었습니다. 사실 6~7개월 먹인 것도 제 예상보다는 오래 갔는데, 아내의 말로는 예상보다 초반 지나니 젖이 나오는 게 큰 부담이 없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래도 양이 모자라 혼합수유를 계속 해 왔었고, 그 덕분에 모유수유를 떼는 데 좀 더 수월했나 싶기도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내의 입장에서는 모유수유 졸업을 했다기보다는 졸업 당했다고 하는게 맞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에도 아내의 움직임보다 아이가 한 발 빨리 젖을 떼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유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아이가 모유수유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고, 그 전부터도 모유 수유 중에 분유병 들고 가면 그 쪽으로 관심을 더 주던 아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모유수유를 끊기로 하면서 아내의 몸은 이제 어느 정도 출산 전에 가까운 모습으로 점점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 젖이 조금씩 남아 있는데, 이건 젖이 차 있으면 좀 뭉쳐서 아프기도 하니, 가끔은 아이에게 젖을 물려 이런 걸 해결합니다. 아내 말로는 유축기와는 확실히 효과가 다르다고 하는데, 아이의 표정은 음....사실 흥미는 예전같지 않지만 그래도 있으면 또 나름 먹습니다. 다른 먹을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말이죠. 이제 아내의 젖이 완전히 마르면 모유수유도 완전히 끊기겠지만, 지금도 실질적으로는 완전히 끊었다고 봐야 될 겁니다. 아이도 이제 굳이 엄마 젖을 찾지 않습니다.


4. 역시 가장 큰 변화는 이제 본격적으로 아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 있겠습니다. 이 아이가 뒤집기는 꽤 빨리 하더니, 그 이후 배밀이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아서, 그 상태로 몇 달이 지났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영 진도가 느리구나...했더니, 그 전까지는 엎드리고 나면 일으켜서 앉혀 달라고 짜증을 팍팍 내던 아이가 어느 날은 엎드렸다가 일어나 앉는 기술을 보여 줍니다. 물론 이것도 똥땡깡부리면서 울고불고 난리치다가 나온 기술이라 마음 한구석에서는 참으로 찜찜함이 남지만, 한 번 하고 나서는 며칠 지나니 곧잘 합니다.

그리고 음...개인적으로는 추석 직전 한 주가 통째로 출장이었습니다. 아이와 엄마 둘만 있다는 소리죠. 그리고 제가 출장으로 출국하는 그 날, 아이는 또 똥땡깡을 부리면서 울고불고 난리치다가 처음 기어가기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전까지는 엉덩이를 들썩들썩 거리면서 슬슬 준비를 하더니, 뭔가 큰 고비를 넘어가는 데는 인내와 고통이 필요한지 똥땡깡 부리면서 펑펑 울어야 뭔가 되나 싶습니다. 아내는 음...이 광경을 보면서 어이없음과 신기함이 함께 떠올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도 집에 와서 기어다니는 아이를 보며 신기함과 당혹감이 함께 떠올랐는데...아이는 제 표정에서 신기함만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한편, 아내는 이 시기에 즈음해서 지금까지 몇 년간 준비하던 공모전에서 당당히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식을 아이가 들었는지, 그 때부터 슬슬 엉덩이 들고 준비하더니, 배밀이도 귀찮고 힘들고 우아하지 않다고 안하던 아이가 갑자기 기어가기 시작하고, 요즘은 의자 잡고 일어서려고 열심히 몸 만드는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걸 보면서, 아이가 엄마 하고 싶은거 될 때까지 기다려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참 재미있는 아이입니다. 배밀이 안한다고 뭐 큰일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기어 갈 수 있게 되면서, 지금까지는 실려 다니기만 했던 보행기를 이제 직접 밀고 다닐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공간이 그렇게 넉넉하진 않습니다만...하루하루 움직임이 익숙해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심지어 먹을 것을 봤다거나 해서 의지가 충만한 경우의 속도는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리고 의외로 보행기 태워 놓는 게 그냥 방바닥 기어 다니는 것보다 안전해 보이기도 합니다. 바닥에 있는 거 주워먹지를 않으니까요.


5. 딸 키우는 아빠의 입장에서, 명절은 그리 달갑지 않은 이벤트이기도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본가 쪽이 경상도 쪽이거든요.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이번에도 아직 아이가 몇 시간 동안 차를 타고 내려가기에는 부담이 커서 저 혼자 시골 내려갔더니, 막상 저희 부모님께는 이미 지난 설 때부터 양해를 구한 문제지만 친척 어른들께서 '그 정도 되었으면 데려 와야지 왜 혼자 왔냐' 는 타박부터 시작해서, '그래도 역시 아들이 있어야 나중에 산소 돌봐주기라도 하지' 이런 소리나 하고 그래서 좀 씁쓸한 기분이 듭니다. 시대가 어느 시댄데 아직도 저런...그 와중에 사촌형은 그래서 아들 미련 덕분에 셋째에 도전해본다고 하는데 음....화이팅입니다. 제가 뭐라고 할 게 아니죠.

저야 뭐...당장 흔적 남기기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자식도 남기지 않을까 했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딸 한 분을 모시고 있긴 하지만, 나중에 굳이 죽고 나서까지 미련 가지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그 미련 챙기겠다고 또 더 낳고 싶은 생각도 없고, 지금도 숨도 못쉴 판에 하나 더 있으면 어 음...진짜 생계가 위협받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정말 서로의 선택과 상황을 존중하는 세상이 더 넓어지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한가 싶기도 합니다. 요즘은 적당한 무관심도 미덕이라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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