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관찰기 (15) - 잠 못 드는 밤 열대야는 내리고 by 파란오이


모름지기 건강하게 사는 법이라면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지금 시대의 사회생활에서 이걸 잘 실천하기는 참으로 쉽지 않고, 뭔가 하나쯤은 타협하고 가기 마련이죠. 아직 돌이 되지 않은 아이가 집에서 왕 노릇을 하고 있는 상황의 제 입장이라면 음...잘 놀고는 애시당초 포기했다만 이제 잘 먹고 잘 자는 것에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아기가 자야 부모도 자든가 뭔가 다른 일을 할 수 있는데, 먹고사는 일이 빠듯할 정도로 시간을 쥐어짜다 보니 슬슬 먹는 시간 자는 시간이 아이에게 먹혀 가는 느낌이 듭니다.

아직 돌이 되지 않은 아이의 부모에 있어, 아이의 잠에는 여러 가지 가치가 달려 있습니다. 아이의 건강과 가정의 평화와 함께, 아이가 자는 시간 동안에 누릴 수 있는 삶의 질 같은 것이 그것이죠. 덕분에 예전에 서너시간마다 꼬박꼬박 알람처럼 일어나던 시절에는 '이 아이는 언제 통잠을 자는가...'하고 그러기만을 바라보고 버티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음...그 때 참으로 간절히 바라던 통잠을 자게 되긴 했습니다만, 잠을 자는 시간의 길이 자체가 아쉬워집니다. 원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이긴 하지만요.

6개월이 지나면서 잠을 설칠 수 있을 여러 가지 원인이 한꺼번에 와서 원인 분석도 쉽지 않았지만, 여하튼 아이의 잠투정은 꽤 많이 심해졌습니다. 게다가 잠투정 뿐 아니라 밤잠이 짧아지고, 낮잠을 아주 짧게 끊어 자면서 잠투정이 같이 오니 잠투정 달래다가 하루를 보내는 경우도 생깁니다. 역시 아기가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는 것은 아기의 삶 뿐 아니라 부모의 삶의 질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1. 네 달 근처에서 네시간에 한 번 깨는 것이 아니라 밤잠을 한 번에 7~8 시간 자던 기특한 아이는 6개월에 다가오면서 뭔가 패턴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11시 전후로 자면 6~7시 정도에 한 번 깨서 젖을 물고, 다시 자면 10~11시쯤 깨는 식으로 하루 12시간 취침을 하던 기특한(?) 아이는 요즘 잠 자는 시간이 10시~11시 사이 정도로 조금 당겨지고, 새벽 6시 정도에 한 번 깨고, 9~10시 정도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는 새나라의 꼬꼬마로 거듭나려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뭐 이 정도면 음...지금까지 낮시간 저녁시간에 하지 못했던 일들을 새벽에 해 왔던 제 입장에서는 슬슬 생업에 위기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시간대가 바뀌고, 심지어 밤잠 시간이 조금 줄어든 것에 약간은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음...이 녀석이 낮잠을 참 안자는 녀석이기 때문입니다. 하루에 낮잠 많이 자면 1~2시간인 아이가, 요즘은 30분씩 끊어서 두어번 자기도 합니다. 다 합치면 한시간 되나...그나마도 졸다가 깨면 도로아미타불이죠. 정말 이건 보람도 없이 시간을 태우는 느낌인데, 그 와중에 해야 할 일의 마감 시간이 다가오는데 빠져나갈 구멍이 없으면 참으로 마음이 답답하고, 스트레스 수치가 쭈욱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여기에다가 슬슬 졸리지 않은 상황에서 등만 대면 역정을 내고, 누군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역정을 내고, 아이컨택하고 베이비토크 안해줘도 역정을 내고 하면 흔히 멘탈이 '털린다'는 상황이 나오기도 합니다. 저도 뭐...회사와 집 양쪽에서 털리다 보면 내가 몸이 두개도 아니고 그냥 회사 때려칠까 하다가 그럼 뭐 먹고 사나 하는 근본적인 빠져나갈 수 없을 함정을 깨닫게 됩니다. 종종 내 인생은 어디로 가나 싶은 느낌도 들고 결론은 이게 다 아이의 잠투정에서부터 온 의식의 흐름이라는 거죠. 역시 잠은 중요합니다.


2. 아이를 잘 재우는 방법이라 해봐야 사실 답은 없지 않나 싶습니다. 잠 자기 전에 잠에 잘 들 수 있는 판을 깔아 두는 것이 좋겠죠.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배가 고프지도 않게 하는 건 참 중요합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잘 넘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긴 합니다. 잘 달래고 흔들고 하는 것은 자기주도적 꼬꼬마와의 협상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섬세하게 밀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멘탈에 부담이 조금이라도 덜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잠을 재우기 위해서는 역시 아이를 졸리게 만들고, 졸리다는 것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 때나 엄마아빠 바쁘고 쉬고 싶다고 아이를 바운서에 앉히면 아이가 참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항의를 하기도 합니다. 그럴 땐 적당히 매트나 아기체육관 같은걸 돌리거나 잘 타지도 못하는 보행기를 태워서 조금씩 끌어주거나 같이 부둥부둥하거나 해서 일단 힘을 빼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여기서부터 허들이 높은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아이가 눈을 비비거나 하는 등 졸리다는 신호가 오기 마련인데, 이 때 바운서 같은 데 앉히고 잘 흔들어 주면 한 10분 정도에 곧잘 자기도 합니다. 너무 조용한 것보다는 적당한 백색소음 비슷하게 음악을 틀어 두는 것도 괜찮아 보이는데, 보통은 클래식, 자장가 이런걸 쓰지만 의외로 네이버 클로바에게 클래식 틀어달라 하면 괜찮다만 자장가는 잠을 깨는 노래들이 나오기도 합니다. 굳이 자장가를 고집하기보다는 전 그냥 제 취향대로 재즈나 뉴에이지 이런 것들을 듣거나 합니다. 한 번은 아빠의 취향으로(!) 걸그룹 노래를 틀었더니 의외로 잘 자는 모습도 있었는데 별로 추천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재웠다고 해도 30분 부둥거려 재웠더니 30분만에 일어나서 왜 자기를 재웠냐며 빼액 하기도 합니다. 아이가 잠들기 전이나 깨자마자 주위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는데, 이럴 때 잘 흔들면 좀 더 자기도 하니, 애가 잠들었다고 해서 자리를 비우기도 여의치 않습니다. 덕분에 전 요즘 거실 테이블에 노트북을 놓고 집인지 카페인지 구분이 쉽지 않은 환경으로 일을 보고 있습니다만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닌 거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아이가 잠을 잘 자려고 하지 않는 건 잠들었다 깨어나면 부모가 딴짓하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3. 최근의 고민은 아이가 밤잠에 들 때 좀 힘들어 보인다는 겁니다. 정확히 말하면 힘들게 잠들면서 주위를 힘들게 한다는 것이죠. 침대에 올라가려 하면 침대에 등 닿기 5cm 전부터 막 역정을 내고 침대에 눕히면 끙끙거리면서 데굴데굴거리고 하다가, 한참 손잡고 같이 자는 척(?) 해줘야 잠이 듭니다. 예전에는 바운서에서 재워서 옮기기도 했는데, 이제는 바운서에서 옮기다 잠이 깨버리니, 그냥 처음부터 침대에서 재우려 하고 있기도 합니다. 

침대에 그냥 두면 요즘은 등을 딱 대자마자 휘릭 뒤집고 막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데, 듣고 있다 보면 무슨 포효를 듣고 있는 기분입니다. 뱃심으로 내니 한 10분 듣고 있으면 귀가 울리는 그런 소리죠. 그리고 뒤집어져 있으면 혹시 코 막히고 해서 위험한 상황이 될까봐 좀 신경쓰이기도 한데, 그렇다고 또 불침번 서듯이 아이를 지켜볼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일단 아이가 쉽게 뒤집지 못하도록 할 아이템을 궁리해 봤는데, 의외의 장소에서 괜찮은 아이템을 찾았습니다. 바로 예전에 아내가 임신했을 때 쓰던 바디필로우인데, 이게 아이한테도 얼추 맞습니다. 참 처치곤란한 아이템이었는데 좀 더 쓸 수 있게 되었네요.

지난 번에 쓰기도 했던 것 같지만, 뒤집기 다음의 복병은 슬슬 올라오는 더위였습니다. 하기야 어른도 자다가 더워서 땀에 범벅 되면 일어나기 마련이죠. 이건 음...에어컨이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현대 과학 문명의 힘은 이럴 때를 위해 있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물론 아이가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적당한 옷과 덮을것, 그리고 미묘한 조절의 묘미가 필요합니다. 쉽지는 않습니다만 어떻게든 해야 합니다. 저희는 거실에 에어컨을 틀고 선풍기로 방에 불어넣는 식으로 해 두고 있습니다. 거실 에어컨은 거의 하루종일 켜져 있긴 한데...경험상 제가 에어컨 켜는 시간에 데스크톱 PC를 쓰지 않는 것으로 전기요금 걱정은 지울 수 있습니다.

이 다음에도 남아 있던 잠을 설치는 문제는 음...드디어 첫 젖니가 올라오는 시기입니다. 슬슬 잇몸이 간지럽고 입을 오물오물하고 막 씹으려 그러고 잘 때 치통이 오고 하는 것이죠. 약을 쓸 수는 없으니 적당히 씹을 수 있는 치아발육기나 이런 걸 쓰고, 조금 더 인내심을 가지고 달래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 쯤 되면 아이의 불면에 대한 짜증이 아이 이빨 올라오듯이 조금씩 올라오는데, 그래도 아이에게는 잘못이 없지 않겠습니까. 이 때는 치발기를 차갑게 해서 물려 주면 냉찜질 같은 느낌으로 좋다고 하는데, 입에 넣자마자 바로 데워지니 별 효과는 없어 보인다는 게 솔직한 감상입니다. 


4. 이 시기의 마지막 복병(?)은 6개월차 영유아 예방접종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예방접종 맞추고 별 트러블이 생긴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달랐습니다. 지금까지의 아이의 반응을 생각해 보면, 2개월째에는 빼액 했다가 하루정도 정말 시들시들했고, 4개월째에는 좀 길게 빼액 했다가 다음날 일어나면 원기를 회복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열이나 이런 것도 하나도 없었고, 아이도 체급이 좀 되는(?) 덕분에 이번에도 좀 안일하게 생각했나 봅니다. 

6개월차에는 주사를 세 대를 맞습니다. 전부 좀 아프다고 합니다. 그 중 하나가 좀 유별나게 아픈 것 같은데, 주사 들어가고 나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달라집니다. 맞고 나서 안아드니 큰 울음은 빨리 그쳤지만 30분 정도는 유모차 위에서 칭얼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사를 맞을 때 간호사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아이가 좀 아프다 할 수도 있고 열이 올라올 수도 있는데 열이 올라오면 해열제를 먹일 수도 있고, 그래도 안되면 병원을 오셔야 된다' 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전 이걸 들으면서도 '뭐 별 일 있겠어...' 하고 병원에서 집에 오는 길까지 몇 개나 있던 약국을 모두 지나쳐 오는 패기를 보였습니다만....

......저녁에 아이가 막 열이 납니다 (....). 그나마 이게 금요일 저녁이라 아이가 좀 칭얼거려서 잠을 설치더라도 부담이 적긴 하지만, 아이가 끙끙대는 걸 보고 있으면서 잠까지 설치면 그리 마음이 편치는 않습니다. 열은 음...딱 집에서 버틸 수 있는 한계선까지만 나더군요. 밤에 24시 약국을 찾아 갈 수도 있었지만 일단은 아침에 좀 나아지기를 바래 보기로 했습니다. 일단 그날 밤은 아이도 한두번 깨면서 잠을 설친 것 같습니다만 별 탈 없이 하루를 지냈고, 열은 약간 내렸지만 여전합니다. 그리고 다행히 토요일 오전인지라 아내가 약국에서 영유아용 해열제를 사 왔습니다. 

해열제를 먹이고 나니, 열은 참으로 아주 천천히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보통 이런 약을 먹으면 아이가 좀 더 잠을 잘 자거나 할 줄 알았는데, 약간 아프고 열나고 잠도 설치고 약도 먹었다는 것을 생각해도 조금 기운이 떨어졌지만 여전히 낮잠 시간은 객관적으로 짧았습니다. 그래도 평소보다는 한두시간 더 잔 덕분에, 이 철없는 아빠란 사람은 거실에서 같이 늘어져 자고 했습니다. 저도 한 주를 좀 격하게 보냈더니 몸살 기운이 같이 도졌는지, 6개월 된 아기보다 더 많이 자 버리기도 했네요 허허허....

5. 아이가 생기고 나서, 직장 주변에서는 미묘한 형태로 아이와 관련된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고 있는 거 같기도 합니다. 비슷한 시기와 또래의 초보 엄마아빠들과는 현재의 고생을 공유하고, 반 세대쯤 위로의 이미 한 세대를 거쳐가신 분들께는 지나가고 되돌아봤을 때의 고견을 듣고는 합니다. 그리고 어느 날은 미팅 중에 이런 잠투정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더니, 그 분 왈 '아이들이 모를 거 같은데 좋은 거 다 안다. 안아주고 부둥부둥하는 게 좋아서 투정부리는 거다...' 라고 하는데 뭐 알고는 있었지만 현실도피하던 것에 뼈를 맞은 느낌이 들더군요. 그분도 그래서 고생이 크셨다고 합니다.

한편, 이 잠투정에는 심심함이란 요소도 꽤 크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가 뒤집기는 빨랐지만 배밀이와 기어가기도 쉽지 않고 해서 유난히 투정이 더 심한가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심심함을 맨날 크게 변하지 않는 집에서 온전히 다 해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아이는 밖에 나가서 산책하다 보면 자거나, 산책하고 들어오면 기분좋게 있다가 자거나 합니다. 덕분에, 이 아이는 동네 스타벅스라도 가면 기분이 꽤 좋아서 싱글벙글하면서 잘 놀다가 잠깐 자다가 그러면서 부모에게 숨 쉴 시간을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게다가 커피숍 가면 아이가 자다가 눈을 떠도 눈 앞에 엄마아빠가 있으니 배신감도 좀 덜 느끼나 싶습니다. 그리고 아빠의 입장에서는 참 신통하면서, 예전처럼 매일 출퇴근 도장을 찍으면서 다닐까 조금 고민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빠의 입장이 아니라 가장의 입장에서 보면 아내의 케어도 중요합니다. 외근이 조금 길어졌던 어느날 집에 오니 아이는 기분이 좀 그랬는지 엄마를 붙잡고 하루종일 칭얼거렸고, 아내도 지쳐서 집안 분위기가 좀 난감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물론 저도 집에 와서 바로 시작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만, 일단은 그걸 어떻게든 때워 가면서, 아내에게는 잠깐이나마 숨 돌리고 오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요즘 제 개인적인 시간은 정말 0을 지나 마이너스로 가고 있지만, 양보할 수 있는 게 더는 없을 거 같음에도 어떻게든 쥐어짜내서 맞춰야 하는 것이 가장의 희생(?)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2), 드디어 처음 아이가 집으로 오는 날 6개월 대여했던 아기침대의 반납이 다가왔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아기침대가 아닌, 다른 곳에 아이를 어떻게 재울 지 고민해야 합니다. 고민할 시간이 정말 하루 남았네요. 조리원 나오기 3일 전부터 푸닥푸닥 하던 시절이 참 멀게만 느껴지는데, 이게 벌써 6개월이자 아직 6개월이라니 허허...이렇게 이상한 시간감각과 함께 시간은 여전히 흘러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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