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관찰기 (28) - 엄마 없이 아이와 함께 지내 본 사흘... by 파란오이


작년에 쓰던 육아관찰기는 작년 초에 여러 가지 일이 있어 연재 본진을 옮겼습니다. 작년 3~4월 정도에 공모하던 '베스트베이비x네이버포스트' 공모전의 아빠의 육아일기 분야 당선작으로 연재(?)를 시작해, 서류상 연재 계약은 8월에 끝났지만 아직도 저 쪽을 본진으로 두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기에 쓰던 내용을 여기로 옮겨오지 않은 것은 조금은 찜찜한 계약서 상의 콘텐츠 우선제공 항목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꽤 긴 시간 독점공개 채널로의 지정이 있었지만, 약간의 이의 제기로 계약 기간 정도에는 24시간 정도의 어드밴티지로 정정되었었습니다만, 그래도 찜찜해서 지난 한 해는 저 쪽을 독점 채널로 두었습니다. 뭐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 없는데, 이제는 귀찮음이 남네요.

초반에는 매주 쓰고자 했으나 생업과 육아 등에서의 어려움으로 이제는 2주 목표도 빠듯한 상황이지만, 올해부터는 양쪽 모두 2주에 하나씩은 뭔가 남겨놓고자 합니다. 그냥 바쁘다고 넘어가니 지나고 나니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말이죠...





드디어 아이도 태어난 지 1년이 지나고, 저희도 작년 이맘때쯤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일이 생겼습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음...조리원에서 막 나왔을 때가 선하게 떠오르네요. 정말 핏덩이같은, 잘못 안으면 꺾이고 부서질 것 같은 아이를 조심조심 안아들면서 막 당황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뭐 여전히 아기이긴 하지만, 그 때 보다는 훌쩍 커서 이제 잘 움직이고 땡깡도 부리고...작년 이 시기엔 상상도 못했던 놀라운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아이는 1년 새 엄청난 성장을 해서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을지도 모르지만, 어른의 시간은 그것과는 또 다르게 흘러가는 느낌입니다. 아이와는 다르게,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게 한 해가 그냥 훌쩍 가버린 느낌입니다. 그리고 아이만큼의 극적인 변화도 찾기는 힘든 것 같습니다. 저도 당장 아이가 훌쩍 큰 것을 빼면, 타고 있는 차나 쓰고 있는 컴퓨터 같은 것들 등, 그냥 주위에 있던 것들이 한 살 씩 더 나이를 먹었을 뿐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흘러가는 어른의 시간에서, 아내에게 예고 된(?) 이벤트가 어느새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작년에 출산 후 병원에서 검진할 때 난소에 물혹이 발견되었는데, 최근 병원에 가서 재확인했더니 조금 더 커지는 바람에 수술을 통한 제거가 필요하다는 소견이 나왔습니다. 뭐 요즘이야 그리 위험한 수술이라고 하지도 않고, 입원 기간도 기껏 해봐야 3박 4일 정도지만, 이걸 오롯이 부부의 힘으로 넘기려면 꽤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1. 난소의 물혹은 사실 가임기의 여성들에 꽤 많이 발견된다고 합니다. 의사 선생님의 설명으로는, 난소의 세포는 피부 아래 모든 조직을 만들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단순한 물혹 뿐 아니라 종종 기형종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그래서 기형종 안에 머리카락이나 치아가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뭐랄까 창조물이 만들어지려다 빗나가 버렸달까...아내는 난소가 기르는 펫이라며 농담을 했지만;; 저희는 당연히 이걸 제거해야 건강하게 살 수 있겠죠...

단순 물혹이면 그냥 놔두면 자연적으로 없어질 수도 있다는데, 기형종은 그냥 없어지지 않기도 합니다. 저희의 경우에는 물혹 두 개 중 하나는 사라지고, 하나는 남아서 기형종으로 자랐습니다. 그래서 이걸 그냥 두면 아무 일 없으면 괜찮을 수도 있지만, 행여 꼬이면 난소를 잘라내야 하거나, 터지면 응급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평안한 일상 생활을 위해서는 이걸 제거하고 가는 것이 좋겠고, 수술을 결정했습니다. 수술은 절개가 작아서 빨리 회복되는 복강경이 주로 활용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술 과정은 아내가 상담하면서 영상까지 보고 왔는데...아내는 '왜 굳이 이걸 보여주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2. 수술 날짜는 음...제가 육아를 전일로 볼 수 있는 제 휴가 기간에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몸 컨디션이나 병원 스케줄 등으로 인해, 조금 미뤄졌습니다. 그래도 제 연차 휴가를 조금이라도 남겨두기 위해 수술 날짜는 금요일로 잡고, 저는 그날 하루만 연차 휴가 를 사용했습니다. 한 해 업무를 시작하자마자 바로 휴가를 사용해서 눈치가 보일 수도 있겠으나, 사실 작년 연말부터 예고를 해놨었기 때문에 별로 개의치 않았습니다. 

이 수술 날짜 잡는 데 어려운 점이라면, 아내가 수술을 들어갈 때 양가에서 딱히 간병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거였습니다. 아이의 조부모님들께 아이를 맡기고 제가 간병을 들어가기도 껄끄럽고, 그렇다고 시부모님께 간병받는 것도 며느리 입장에서는 참 껄끄럽고 말이죠. 이러다가 수술 첫날 간병인도 없이 그냥 있어야 될 상황까지 눈 앞에 오다가....결국 처제가 올라와서 수술 당일 정도까지만 간병 커버를 해 주기로 했습니다. 다행입니다.

일단 이렇게, 아내가 병원에 있는 동안 육아는 오롯이 아빠의 역할이 되었습니다. 제가 외국 출장 갈 때 아내가 느끼는 압박감이 이런 건가 싶긴 했습니다. 게다가 아빠의 핸디캡. 바로 요리가 안된다는 것....다행히 이럴 때 쓸 수 있는 카드로 매일 배달되는 이유식을 미리 주문해 놓았습니다. 물론 이것도 일요일에는 생산하지 않으므로, 월요일에는 아내가 퇴원 후 아픈 몸을 이끌고 이유식을 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 문제까지 해결하고자, 아내의 입원 3일 전부터 한 끼는 집에서 만든 이유식을 먹이고, 그래서 하루치 이유식 세 병을 남겨서 아내가 없는 월요일을 때우자...고 했으나, 아내는 내심 아이 먹거리가 마음에 걸렸는지 입원 직전, 그 바쁜 와중에 어떻게든 이유식을 해 놓고 갔습니다. 그래서 고맙게도 일단 아이 먹일 걱정은 덜었습니다.

그럼 이제 남은 것은, 아빠가 하루종일 아이의 데일리케어를 모두 다 커버할 수 있느냐가 됩니다. 이건 음...평소에는 아내와 어느 정도 나누어서 하는데, 또 다시 생각해보면 최근 휴가기간에는 아내가 요리와 집안일을 주로 하고 아이 케어는 거의 제가 다 한 거 같은 느낌도 듭니다. 머릿 속에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니, 휴가 기간에 했던 것에서 큰 차이가 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들긴 합니다. 물론 언제나 시뮬레이션대로 흘러가진 않습니다만...머리 한 쪽에는 일말의 돌발상황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다른 쪽에는 약간의 용기가 공존하는 상태로 그 날이 왔습니다....

3. 아내의 수술은 금요일 오전, 그리고 전날 저녁에 수술 전 준비를 위해 병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막상 목요일 오후에는 딱히 할 게 없는게(?) 최대한 빨리 외근을 끝내고 돌아와서 아내가 병원 갈 때 필요한 짐을 꾸리는 동안 아이 좀 붙잡고 있다가, 아내가 병원으로 출발하고 나면 슬슬 아이가 잘 시간이니 일단 평소처럼 밥을 먹이고 옷을 갈아입혀서 재우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이 때까지는 평소 저녁에 엄마 없이도 아빠가 재우는 경우가 많아서 아이도 별 신경 안쓰고 그냥 잘 자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본 게임은 금요일부터죠. 아침에 일어나서 여느 때처럼 거실에서 데굴거리다가 아침식사를 하는 것까지는 평소에도 주로 아빠가 챙기는 거였는데, 평소와 다른 점은 엄마가 밥 먹을 시간까지 나타나지 않는다는 거였죠. 원래 아이의 루틴 중 하나가 밥 먹기 전인 오전 8시쯤 엄마방 문을 밀고 들어가 엄마를 깨우며 귀찮게 하는 거였는데(....) 이 날은 들어가보니 방이 비어 있습니다. 이 때 아이가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뭐 그 당시에는 아빠도 있고 하니 그냥저냥 무던하게 넘겼습니다만...그 이후에도 하루에 두어번 정도는 엄마가 생각나서 집 안을 뒤져보는 모습이 보여 조금 짠하기도 했습니다. 아내가 남편과 아이가 궁금할까 싶어 위의 아이 사진을 아내에게 보내 주었더니 '엄마 소환 마법'을 쓰는 마법사 같다는 평이 돌아왔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아빠가 옆에 있다 보니, 별다른 불안감 없이 적당히 먹고 놀다가 자는(...) 평소의 생활대로 움직였습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엄마가 없다 보니 하루 종일 좀 심심한(.......) 아빠와 있어야 한다는 건데, 아이는 이것도 나름대로 적응되어 있었나 싶기도 합니다. 제가 출장 갈때마다 아내의 말이, 아빠 없이 엄마하고만 있으면 집안에서도 조금만 떨어져 있어도 아이가 불안해 하고, 집착이 좀 보이고 해서 힘들다던데, 반대 상황에서는 음....비슷한 상황이 나오는 거 같긴 한데 비교하긴 좀 힘들 듯 합니다. 그냥 유형이 다른 것으로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이유식과 금요일 오전에 가는 문화센터 정도를 제외하면 나머지 돌보기는 아내와 거의 같이 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이틀 동안의 육아에서 낯선 상황이 닥친다든가 이런 건 딱히 없었습니다. 목욕 이벤트라도 있었으면 아빠 혼자 하기는 좀 힘든 상황이 왔을 것 같긴 한데....뭐 겨우 이틀 정도니 그냥 평소처럼 닦아주는 정도로 정리했습니다. 그렇게 아이의 칭얼거림을 적당히 모른척 무시하면서, 여하튼 이틀 정도는 무던히 평소대로 넘어가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4. 아내는 처제와 함께 목요일 저녁에 병원에 가서 금요일 오전에 수술을 받고, 처제는 금요일 저녁에 집으로 내려가고, 금요일 저녁부터 퇴원하던 일요일 아침까지는 병실에 혼자 있었습니다. 1인실을 썼기 때문에, 수술이 막 끝나서 아픈 상황이지만 정말 말 그대로 1년만에 맞는 혼자만의 시간(.....)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내의 말로는 주사를 매일 맞고 링겔을 맞고 있는 건 맘에 들지 않지만, 육아에서 벗어나 낮잠을 잘 수 있었던 건 좋았다고 합니다. 물론 병실의 스케줄은 생각보다 분주해서, 몇 시간에 한 번씩 간호사가 들어오고, 밥이 들어오고 하면서 정적을 깨곤 합니다. 

사실 제가 아이를 보는 것만큼이나 걱정했던 것이, 수술 당일 이후 처제가 내려가고 나면 누가 아내를 돌봐주나...였는데, 막상 수술이 끝난 아내는 생각보다 상태가 괜찮아 보였습니다(?). 수술 당일 하루는 힘들었는데 그 땐 옆에 사람이 있었고, 그 다음날은 여전히 힘들었지만 혼자 움직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작년 제왕절개 끝나고 움직일 때 힘들었던 걸 옆에서 봤던 입장에서는 참 듣기만 해도 다행인 소식입니다. 그리고 무통주사 끊은 날 컨디션이 급 떨어지다가 다시 올라오고, 전체적으로는 제왕절개보다는 훨씬 덜 아프고 덜 힘든 수술이라는 평이었습니다.

3박 4일 입원이라길래 퇴원이 일요일이냐 월요일이냐...싶었는데, 토요일 저녁에 아내가 일요일 10시까지 병원으로 오면 된다고 연락을 주었습니다. 저 위에 쓴 사진처럼, 아이의 엄마 소환술이 성공한(?) 느낌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 7시 전후로 아이의 보챔에 일어나서 기저귀를 갈고, 아침을 먹이고, 옷을 갈아입히고, 아이가 태어난 곳이자 엄마가 있는 병원으로 출발했습니다. 차를 몰고 가면서 아이와 둘만 타 본건 또 너무 간만이라 기억에 없다는 생각도 들고, 차가 서기만 하면 칭얼거리고 우는 아이를 운전석에서 달래기도 쉽지 않아서 그냥 적당히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다행히 차가 많이 막히지는 않아서, 아이 울음소리는 그리 많이 듣지 않았습니다.

5.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일요일이니 당연히 외부인은 통제 대상이고, 병실에 들어가려면 간호사실을 호출해서 문을 열어야 합니다. 이럴 때 당혹스러운 점이라면, 병원이 영아와 부인들이 많은 산부인과이기도 하고 입원 때도 같이 가지 않았던 덕분에 이 수상한 아저씨가 환자의 남편이라는 점을 어떻게 증명해야 하나...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 수월하게, 별 의심 없이 통과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라면 병원에 들어갈 때 힙시트에 메고 간 아이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냥 혼자 왔으면 약간의 의심을 받을 수 있겠지만, 방긋방긋 웃는 아이를 매달고 온 애 아빠라면 그리 의심하지 않는 느낌이랄까....병실에 들어갔을 때 아내의 감상은, 예상 이상으로 야무지게 아이를 데리고 와서 반갑고 놀라웠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작년에 병실과 조리원을 거치면서 2주간 있었던 곳이라, 들어가면서도 그리 크게 낮설지 않은 분위기였습니다. 그리고 이 '친숙함'은 식사에서도 예외가 아닐 것 같았는데...역시나 그 지겹던 미역국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 아내는 산모가 아니라 일반 메뉴가 나오기도 했지만 말이죠. 저야 아내 출산 때 한 2주간 주구장창 나오는 미역국을 참 맛있게 잘 먹었는데 아내는 만일 일주일동안 미역국만 먹어야 하는 고문이라도 당한다면 바로 모든 비밀을 실토할 것 같을 정도로 지겨웠다고 합니다.

한편, 아내는 수술 이후에 자신의 물혹 수술 영상도 볼 기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 것이 아닌 자기의 수술 영상을 본 감상은, 물혹이 참 동글동글하고 귀엽게 잘 만들어졌고, 난소가 참 크리에이티브한 감각이 있지 않나...하는 자기애 가득한 감상도 내놨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감상으로는 이 물혹은 참으로 잉여로운 난소의 예술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는데, 기능적 무쓸모라서 미학적이라는 해석을 내놨습니다. 여기서 제 감상은 음...물혹도 생명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폭풍 같은 이틀이 지나고 나서...안타깝게도 저희 집에는 감기가 돌았습니다. 아내가 입원하기 전인 목요일에 외근 갈 때 대중교통 타고 나가면서 묻혀 왔나 의심하고 있긴 한데, 저도 약간 콧물과 몸살 감기 기운이... 아이도 콧물이 줄줄 흐르면서 며칠을 지냈고, 그러다가 아내도 집에 오자마자 옮은 느낌이더군요. 뭐 그래도 저와 아내는 감기약 먹고 간단히 증상이 호전되었고, 약을 쓸 수 없던 아이는 병원 갔더니 별로 큰일 아니래서 며칠 더 기다렸더니 어느 날 또 콧물이 멎었습니다. 여러 모로, 역시 건강이 최고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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