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관찰기 (8) - 100일의 기적과 기절과 난리법석 by 파란오이


이번에는 사진을 좀 평범한듯 누구나 다 찍어볼 법직한 컨셉사진으로 해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사진을 주기적으로 찍어 두시기를 추천하는데, 아이는 너무도 빠르게 훌쩍 커버리고, 이런 작고 보드랍고 귀여운 순간은 정말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사진이 딱 한달전인데 음...뭐 지금은 정말 조금 더 컸습니다. 

바야흐로 60일의 변신을 지나고, 아이는 이제 우는 것 대신 옹알이를 시작해 뭔가 분명하게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하고, 따뜻한 햇볕 비치는 창가에서 바깥 구경 하면서 음악듣다 바운서 흔들면 잠도 좀 자고 하는 평화로운 시절에(?) 접어들었습니다. 그 전처럼 그냥 냅다 우는데 톤이 미묘해서 그걸 구분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옹알이의 내용이 달라지니 좀 알기가 쉽습니다. 그래도 워낙 어린 아이라 그렇게 지적 생명체의 복잡함을 전달하지는 않고, 배고픔과 졸림, 심심함 정도의 패턴을 파악하면 대부분의 상황에 당황하지 않고 움직이는 자기 자신을 보게 됩니다. 

100일 근처에 오면 아이가 또 한번 달라집니다. 잠이 더 길어지고 먹는 텀이 조절되고, 애도 좀 더 차분하게 훌쩍 자란 모습을 보인다고 하죠. 수면교육 딱히 열심히 안해도 잘 잡히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베스트 시나리오로 흘러가 주면 보통 '100일의 기적'이라 하는데, 그 과정이 좀 느긋하게 넘어가다 보면 60일 이전의 모습으로 밤에 따박따박 깨고 먹기도 자주 먹고 보채기도 자주 보채고 더 극성으로 보채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게 보통 '100일의 기절(...)' 이라 부르더군요. 



1. 일단 전통적으로 보면, 100일을 넘어서면 슬슬 신생아를 벗어나 어느 정도 성장을 해서 몸집도 좀 되고 향후 생존 확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쯤 되면 먹이고 할 때도 양 조절 등이 어렵지 않게 되었던 기억입니다. 적당히 먹다가 배부르거나 먹기 싫으면 뱉아버리고 온몸으로 먹기 싫다 하고, 때로는 한숨도 쉬더군요. 이건 놀이할 때도 비슷한 모습인데, 알고 있지만 볼 때마다 놀람과 자괴감이 섞여 옵니다.

100일에 가까워지면서 사실 저희 부부는 사뭇 기대를 좀 했습니다. '100일의 기적'에 기대를 안했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근 석달 넘게 밤잠을 끊어 자면서 체력이 소진되고 몸이 바스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었는데, 석달 넘어가면서 밤잠이라도 좀 길어지고 혼자 낮잠도 좀 자고 하면 열마나 행복한 상상이겠습니까. 물론 누군가 그랬습니다. 기적은 이루어지지 않아서 기적이라고...너무 오래된 코멘트긴 한데 진짜 이 20년 전의 대사를 머리에 되새기게 되는 그 상황이 드디어 오긴 합니다.

'100일의 기절'이 눈앞에 오니, 일단 제 머릿속에 그려지던 상황은 딱 한달전 상황으로의 롤백입니다. 점점 길어지던 밤잠은 다시 4시간에 한번 따박따박 깨서 수유를 하는 패턴으로 바뀌고, 잠들기 전에 잠투정이 아주 격렬해집니다. 잠투정은 어디서 보기로는 수면파가 교체되면서 겪는 증상이라고 하는데, 뭐 이 시기는 잘 참고 넘기면 된다고 하더군요. 이 시기에 무리해서 교육에 나서는 것은 그리 추천되지 않는 사항이라는 것 같습니다. 아이가 이렇게 꼬박꼬박 잠을 깨면 제 기억에는 군대 있을 때 서던 야간 불침번이 생각나긴 한데, 그때는 젊고 체력도 넘쳤었지만 그래도 차라리 지금 집에 있는 게 낫습니다 아무렴요....

덤으로, 낮잠을 잘 못자면 역시 캥거루처럼 아기띠로 둘러매면 또 잠을 잘 자기도 합니다. 몸이 좀 커지니 잘 맞긴 한데, 한시간쯤 메고 있으면 저도 아기도 땀 덕분에 자리에서 한 번은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어른의 사정에 맞춰서 애를 막 재우려 하다 보면 아이는 언제 깨어 있는 건가 싶은 걱정이 조금 들기도 합니다. 워낙 먹고 사는 것이 쉴 겨를 없이 바쁘게 지나가니, 저도 제정신으로 아이를 보고 있을 시간은 따져 보면 하루 한두시간 간신히 되려나 싶은 것이죠. 그래도 이 시기에는 정말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어쩌겠습니까 아빠가 잠이라도 줄여야지....


2. 퇴화도 진화의 일종이라는 말이 있고, 진화는 사실 언제나 발전하는 거라기보다는 어떻게든 움직이는 것 자체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100일의 기절 다음에도 기적같은 모습이 알게 모르게 찾아오니 여전히 인내의 끈을 놓지 마시고 기다리시면 됩니다. 저희 아이의 경우 100일에서 보름이 좀 더 지날 때쯤 되니 슬슬 힘들었던 기절의 시기를 벗어나기 시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제일 감동적인 건 역시 어느 날 갑자기 밤 수유를 건너뛰고 애가 잘 자고 있던 것을 느낄 때입니다. 새벽에 한 번은 깨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열두시에 자더니 일곱시를 넘어 아홉시에 일어나면서도 방긋방긋 웃는다거나 하는 걸 보면, 아 이 아이도 많이 컸구나...하는 착각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초반에는 12-7 이나 2-9 정도의 패턴에 자고 일어나서 먹고 나서 낮 12시까지 내리 자는 패턴이 많더니, 요즘은 밤 12시에 자고 8시에 일어나 먹고 나서 12시까지 자다 일어납니다. 하루 반나절을 거의 통잠을 자고 일어나니, 처음에는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밤수유 빼먹고 기억을 완전히 잃었나 놀라서 기록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이제는 기록 찾아봐도 크게 당황하지 않습니다.

달라진 점이라면, 아이가 낮잠을 거의 안잡니다. 눈을 부릅뜨고 열심히 부둥거리고 놀고 하는데 아빠는 졸려 죽겠는데 아이가 부둥거리면 아이하고 놀아주다 아빠가 그냥 거실에 웅크리고 자버리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렇게 아빠가 자면 애가 그걸 보고 한숨 한번 쉬더니(?) 같이 자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정말 이제는 훌륭한 지적 고등생물의 자격을 갖춘게 아닌가 하는 착각을 다시 한번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낮에 휴식시간을 내려고 애를 낮잠재우려면, 역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굴려서(?) 체력을 빼는 게 최고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놀아준다고 해도 별거 없습니다. 바운서에서 발 밀어주고 팔 당겨주고 아기체육관 돌려주고 뒤집기 연습좀 시키고 안고 다니면서 그림친구들에 인사시키고 뒷산 풍경 좀 보고 뭐 이런 것들입니다. 그림책 실감나게 읽기는 참 어려운 일인데, 아내가 읽는 거 보면 역시 교육 전공과 경험자는 차원이 다르구나 싶은 느낌도 듭니다. 여담이지만 이 발 밀어주기는 아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빠만 보면 씨익 웃더니 발을 쭉 뻗고 힘을 줍니다. 밀어달라는 거죠. 처음에는 그냥 밀기만 했는데, 어느 날부터는 애가 흔들리는 타이밍 맞춰 발에 스냅도 주어, 직접 자기가 발차기 해서 흔드는 것 같은 극적인 효과까지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아이와 놀아주면서 가장 큰 적은 지겨움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이와 아빠 모두에 말이죠. 뭐 다들 경험 있으실 테지만, 어릴 때는 같은 책 수십번도 더 읽고 읽어달라 보채고 했는데, 어른들은 아이 그림책 세번만 읽으면 지겹고, 그래서 빨리 넘겨버리고 안읽고 하는데 아이는 그렇지 않으니 여기서 오는 간극이 좀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 입장에서는 매일 보는 그림이 며칠 보다 보면 지겨울법도 한데 그렇다고 자주 바꿔달기도 은근 힘듭니다. 그렇다고 내 몸 편하자고 테레비 보여주려다가는 아내에게 철없는 아빠라고 등짝 스매싱을...사실 TV 켜놓고 아이 굴리다 아이 눈이 TV에 가서 꽂히는 걸 보면, 아 이건 무서운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등골을 타고 올라오기도 할 겁니다.


3. 예전에야 아이의 100일은 집안의 기념할 만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100일 반지나 이런 것들 하는 집도 있고 한데, 저희는 만사가 귀찮아(?) 100일의 집안 행사는 과감히 생략하기로 했습니다. 양가에 각자 연락해서 '이번 100일에 잔치 이런건 귀찮아서 없다'로 통보하고 편안히 보내기로 했죠. 물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한 건 아니긴 합니다.

여전히 약간의 앙금이 남아있는(?) 사진 스튜디오들의 중요한 레퍼토리 중 하나가 이 100일 사진입니다. 솔직히 100일 사진도 살면서 크게 의미가 있겠나 싶은데, 그래도 남겨 놓으면 부모에게는 괜찮은 추억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굳이 스튜디오를 찾아 찍기는 여러 모로 귀찮고 불편하고 비용이 부담되고, 이왕 어느 정도 장비도 갖추고 있으니(?) 직접 소품을 빌려서 해보기로 했습니다. 거실에 테이블 하나 놓고 소품을 대여해서 셋팅해 봤는데, 생각보다 그럴듯하게 나오고, 비용은 하루 빌리는데 옷 포함해서 6만원 정도 들었습니다. 택배 오고가고 포장뜯고 포장하고 하는 게 좀 귀찮긴 했습니다.

세팅에 있어 좀 까다롭던 점은 테이블 뒤에 가림막 설치를 잘 맞추기가 참 힘들더라는 겁니다. 뭐 이거야 벽에 잘 매달아 붙이면 되겠지만, 저희는 약간 늘어뜨렸더니 조금만 뒤틀어져도 구멍이 나는데, 이건 나중에 후보정 포토샵으로 어떻게든 해보기로 했습니다. 장비는 음...작년에 사서 아직 할부가 남았지만 이미 셀프로 진행한 만삭촬영여행과 신생아 촬영 등으로 본전 찾은 것 같은 DSLR을 썼고, 아쉬운 건 플래시를 쓸 수 없다는 거였습니다. 인공태양 급 플래그십 스트로보가 있는데 아이 눈에 악영향이라고...그러면 뭐 형광등을 좀 밝게 켜고 고감도 촬영으로 가서 나중에 필사의 후보정으로 색을 살려야죠.

사실 제일 까다롭던 건 아이의 상태였습니다. 100일 전후면 목을 어느 정도 가눌 수 있고, 의자에 앉힌다고 막 꺾여서 위험한 상황까지 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가누지도 못합니다. 즉 이쁜 각도를 잡기 참 힘들다는 것이죠. 이래서 많은 스튜디오들이 애를 막 굴리면서 찍고, 눕혀놓는 사진도 찍는 건가 봅니다. 저희는 눕혀서 찍는 사진은 다시 소품 깔기 귀찮아서 과감히 생략했습니다. 뭐 평소에 남겨놓는 사진도 화질이 아쉽긴 하지만 어떻게든 되겠죠....

여담이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귀욤귀욤 샤랑샤랑 드레스도 이쁘긴 한데, 평소에 입는 귀여운 무늬의 우주복 이런 것도 사진 찍어 놓으면 참 괜찮습니다. 드레스급 이상으로 맘에 드는 경우도 있고 말이죠. 그리고 아이가 참 빨리 커서 100일과 130일의 차이는 크긴 한데, 제대로 앉아있는 사진 찍으려면 100일 사진은 100일에 찍으면 안될 거 같기도 합니다. 매일매일 바뀌는 아이의 컨디션 문제는 아예 고려도 못하죠. 저희도 저렇게 다 세팅하고 막상 찍은 시간은 기껏 해봐야 딱 10분...인데 그래도 그럭저럭 괜찮게 건졌습니다.

이걸 집의 부모님께 보내드렸더니 100일 잔치 안한다 해놓고 했냐고 물으시더군요. 사진빨은 나름 괜찮게 뽑은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4. 이 시기에 있었던 일은 아니지만 카메라 이야기 나온 김에...전 DSLR 카메라에 입문한 이래 10여년 간 쭉 니콘 계열을 이어 오고 있습니다. 처음 쓰기 시작했던 것이 회사의 D80이고, 그 다음이 저 사진의 D700, 중간에 D7000과 Nikon1 J5를 세컨으로 굴리다가 D700을 작년 여름 잠정 퇴역시키고 지금은 D7500이 메인입니다. 그리고 2011년 중고로 가져와서 지금까지 쓰던 니콘 D700은 참 오래도 쓰긴 썼는데, 드디어 그 기력을 다하고 기능 고장으로 퇴역을 결정했습니다. 수리하기에는 이미 10년이 된 기종이라 굳이...
그렇다고 이 카메라를 쿨하게 재활용 쓰레기로 내놓을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아까워서라는 건 아니고, 사실 이 카메라를 구입한 게 지금의 아내를 만나기 딱 1주일 전입니다. 그리고 몇 년의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거칠 때까지 계속 열심히 기록을 남겨 왔던 물건이기도 하죠. 고장난 타이밍도 아이가 집에 와서 50일쯤 되었을 때, 간만에 이 카메라가 생각나서 한번 찍어볼까 하고 꺼내서 몇 컷 찍는 동안 셔터박스가 말려 올라가 내려오지 않게 되었으니...무슨 할아버지의 시계같은 카메라가 생각나네요. 지금은 장농에 들어가 있는데, 나중에 아이가 크면 이런 이야기도 전해줄 날이 있을까 싶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예물함 한구석에 넣어두고 싶을 정도입니다.

여담으로, 흔히 아이들 찍는 아빠카메라를 APS-C 입문-중급기 정도를 추천하는 경우가 많은데, 뭐 아이 키우는 집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 그 정도에서의 번들셋이 맞겠으나 막상 성능을 생각하면 APS-C 크롭이라도 고성능 중고급기를 가는게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AF 잡는 능력이나 연사, RAW촬영 성능 등에서 생각보다 아쉬움이 나오기도 합니다. 저도 뭐...D7500 살때 렌즈 프로모션 아니었으면 당장 D500이나 D750을 생각했을 것이니 예외가 아니겠군요. 지금 바디의 성능은 살짝 애매하게 아쉬운 것이, 아기 얼굴과 살갖은 AF가 좀 헤맵니다. 이거보다 하위 기종은 과연 지금 촬영 조건에 버틸지부터 조금 의심스러워지는 것입니다. 사실 그렇게 자주 찍지도 않지만서도....


5. 이렇게 100일의 기절과 기적, 그리고 분주한 100일 사진촬영을 넘어가면서, 슬슬 계절이 바뀜을 느꼈습니다. 어느새 영하의 찬바람은 간데없고, 밤에는 조금 쌀쌀하지만 낮에는 훈훈함을 넘어 살짝 더운 느낌까지 나는 것을 보고, 새삼 세 달이 정말 훌쩍 지나갔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참 집밖에 안나왔다는 것도 새삼 느끼고 말이죠. 창밖에 벚꽃이 만개해 있는데 이것도 정말 잠깐 지나갔습니다. 언제나의 이야기지만, 한국은 여름과 겨울, 건기와 우기의 2계절이 뚜렷한 국가입니다. 나머지는 스쳐 지나갈 뿐이죠.

그리고 100일을 넘기고, 벚꽃이 지나가면서 새삼 느껴지는 건, 드디어 이 시리즈의 처음을 장식했던 아빠의 육아휴직 3개월이 거의 끝났다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회사는 데스밸리같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버텨냈었고, 저도 쌓인 일이 많지만 어떻게든 복직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복직 직전에 간만에 사무실에 나가서 관리자급 회의를 하면서 들은 이야기는, 제가 없는 동안 제 자리의 역할이 조금 많이 바뀌었다는 건데, 이거야 뭐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요즘도 머릿속에는 지금 이대로 좋은가...싶은 불안감이 조금은 남아있긴 합니다만, 일단은 눈앞의 상황에 집중해 보기로 했습니다.


6.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네이버 포스트 베스트베이비 공모전에서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설마 했는데...뭐 그래서 이 시리즈물은 네이버 포스트 베스트베이비 관련물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겁니다. 약간의 부수입은 덤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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